CEO 인터뷰 / 주진영 ㈜카오리온 코스메틱스 회장
저자극 화장품 브랜드로 연매출 200억 넘어서
수분크림 떠 먹고 제품 품질·안전성 알려 유명세
‘화장품 먹는 여자’. 화장품 기업 ㈜카오리온 코스메틱스의 주진영(49) 회장의 이름 뒤에 늘 따라붙는 꼬리표다. 이 수식어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이다. 1995년 카오리온을 설립한 주 회장은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발라보는 것도 모자라 화장품을 먹기까지 했다. 무색소, 무향료, 무알코올 제품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제가 수분크림을 떠서 입에 넣었더니 다들 깜짝 놀라더군요. ‘몸에 해롭지 않으냐’ ‘왜 무모한 짓을 하느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화장품이라면 먹을 수 있을 만큼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전을 한 거죠. 물론 제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품질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의 도전은 오래지 않아 인정받기 시작했다. 천연 화장품 불모지나 다름없던 19년 전 화장품 업계에 등장한 카오리온은 지난해 연매출 200억원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유명 뷰티 방송의 모공 케어 분야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명품 브랜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의 성과를 얻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대학 졸업 후 패턴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결혼 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그가 창업에 뛰어든 것은 남편이 수입한 유명 색조화장품 브랜드 판매가 저조해지면서부터다.
“당시엔 남편이 건네준 첫 월급을 단 3일 만에 다 써버릴 정도로 경제관념이 없었어요. 하지만 나머지 한 달을 남편 몰래 굶으면서 돈이 무섭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죠.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곧장 영업에 뛰어들었는데 동분서주 뛰어다니다보니 어느 새 판매가 늘더라고요.”
주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기로 하고 개발에 들어갔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색조제품이 아닌 기초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민감한 피부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판매되던 제품은 인공색소로 색감이 화려하고, 인공향으로 향이 강하고, 알코올로 발림성이 시원하고 매끄러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자극적인 제품을 피부에 바르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주 회장은 자신처럼 민감한 피부에도 잘 맞는, 알코올·색소·향료를 뺀 제품을 개발해 출시했다. 스물여섯 때였다. 창업 3년 만에 일본과 프랑스 수출을 이뤘고, 제조자개발생산(ODM) 사업을 통해 매출을 확대해나갔다. 2000년 코미디언 김미화씨를 모델로 기용한 TV CF로 화제를 낳았다. 2005년 3000여 개에 이르는 국내 화장품 오프라인 매장에 진출했고 화장품 전문 유통체인인 세포라(SEPOHORA)에 한국 브랜드로는 최초 입점했다. 승승장구하던 카오리온은 2005년 한 번 휘청거렸다.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휘말려 부도를 맞은 것이다.
“직원들과 함께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직원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그때 짐을 싸는 직원들에게 2013년 다시 사옥을 짓고 직원 사택도 짓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다행히 이번에 사옥으로 이사하면서 조금 늦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이제 또 사택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죠.”
인터뷰 내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주 회장의 눈은 직원들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로 가득 찼다. 그는 직원들과의 약속대로 2월 중순 서울 강남구 논현2동에 5층 규모의 신사옥을 건립했다. 주 회장은 카오리온의 성공 비결에 대해 “창업 당시 정했던 경영 원칙을 20년 동안 지켜온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민감성 피부를 위한 저자극 브랜드’ 하면 카오리온이 떠오르게 하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렇게 19년 전 정한 3무(무알코올·무색소·무향료) 원칙은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는 무방부제, 무파라벤, 무광물성유 등이 포함된 21무 제품을 완성했고요.”
주 회장은 이런 경영철학을 올해도 이어갈 예정이다. 2014년을 ‘영업의 해’로 정해 기존 온·오프라인 영업을 확대하고 백화점과 ODM 영업 등으로 다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매출 목표도 500억원으로 잡았다. 그는 성공한 여성 CEO이자 워킹맘으로 후배들에게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이도 돌보고 일도 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저도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키우다보니 몸이 피곤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면, 마음이 부자가 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인정받는 날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