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여, 한계는 없다” 강하면서 다정한 ‘무민 마마’

북유럽의 추운 지방에 자리한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국가다. 하지만 국가청렴도 1위, 국가경쟁력 1위, 교육경쟁력 1위로 모든 국가가 부러워한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3만6000달러로 전 세계의 23번째에 해당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시사점을 얻으려고 하는 국가가 됐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이는 국가의 모든 여성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준 여성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년간 핀란드를 통치했던 타르야 할로넨(Tarja Halonen)은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구자’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활동이 핀란드의 모든 여성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재임에 성공한 첫 여성 대통령

할로넨 같은 여성 최고지도자는 1960년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된 후 현재까지 113명이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16명의 여성 대통령, 여성 총리가 있다. 이 중에서도 할로넨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재임 기간이 총 12년으로 대통령 임기 6년을 두 번 했다. 즉 재임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두 번째는 지지율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취임 때 국민의 지지가 높지만 퇴임할 때는 지지가 높지 않다. 할로넨은 달랐다. 대통령선거 시 50%를 살짝 넘긴 지지로 당선됐지만 퇴임 시 80%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화려하게 퇴임한 여성 대통령이다. 세 번째로 그는 두 번째 임기 중이던 2009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었으며 핀란드뿐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영향력 높은 인물이었다.

할로넨을 알려면 두 가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핀란드라는 국가에 대해 알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핀란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핀란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 소련의 지배를 받아 외세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한 유럽의 약소국이다. 12세기쯤부터 스웨덴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이후 19세기에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어 국방에 대한 관심이 높고 현재도 전 국민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다. 독립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중립정책을 취하면서 냉전시대 소련과도, 서방과도 친하지 않고 독자적 노선을 걸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국가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할로넨은 대통령으로 연임했다. 그가 얼마나 국민의 지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핀란드 내 여성의 지위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여성들에게 피선거권이 주어진 나라다. 1906년 선거권과 더불어 피선거권이 여성에게 주어졌고 이듬해 의회 선거에서 여성 의원이 19명 당선될 정도로 여성의 지위가 일찍부터 보장됐던 국가다. 여성노동운동가였던 미나 실란파는 1926년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됐다. 핀란드 여성들이 일찍부터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노동력 충당이라는 절대적 과제 앞에서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핀란드 여성들은 남성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3∼4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기업에서도 다른 문화의 여성들보다 훨씬 존중받으며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할로넨에 따르면 핀란드 여성들은 진정한 생존자이며 열렬한 활동가이고 정직하고 겸손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할로넨이 한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왔을 때, 호텔에서 자신이 가져온 다리미로 옷을 직접 다리고, 자신의 머리를 직접 만졌다는 것이 한동안 한국 신문의 기삿거리였는데 이러한 소박하고 열심히 일하는 겸손한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핀란드 여성의 모습일 것이다.

그의 별명은 ‘무민 마마(Moomin Mama)’다.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의 엄마라는 뜻으로 ‘엄마 대통령’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민 벨리에서 가족을 돌보면서 외부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는 강하면서도 다정한 엄마, 그러면서 소박하고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오늘날 핀란드의 젠더 갭이 전 세계 136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으며 노동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반(55.9%)을 넘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할로넨은 더 일찍부터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할로넨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용접공이었고 어머니는 재봉사로 헬싱키 중심에 있는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곧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됐고 전쟁 이후에 부모가 이혼한 데 이어 어머니는 전기공이자 노동운동가였던 새아버지와 재혼했다. 어머니는 적극적인 전형적 핀란드 여성으로 노동문제에 관해 할로넨의 눈을 뜨게 해준 인물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형법을 전공해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로 핀란드 대학생조합에서 사회문제 담당을 지낸 데 이어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조합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핀란드 노동조합 중앙조직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평생 그가 몸바쳐 일하게 될 노동자들의 권익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노동조합은 다른 국가에서도 그렇지만 핀란드에서도 상당히 남성적인 조직이었다. 변호사로 일할 당시 그는 노동조합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다. 그곳에서 그는 조합에 숨어 있는 남성문화의 문제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의 평생을 지배했던 ‘평등과 정의에 대한 의식’은 바로 여기 노동조합에서 일하면서 생겨났다. 노동자들의 권익이라는 사회적 정의,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평등의식, 이 두 가지가 가슴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할로넨은 의지가 굳은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신념에 충실한 정치인이다.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둘째는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셋째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살고 정치가나 세상에 이름을 날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 그런데 결국 세상이 기억하고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일 것이다. 할로넨이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그는 1970년대에 동성애자 단체를 위한 변호사 일을 하다가 1980∼1981년 남성 동성애자 단체의 회장직까지 맡았다. 그 이후 동성애자라는 소문까지 돌았고 그것이 정치에서 가십거리로 등장했지만 일체의 변명도 없이 공개적으로 동성애 결혼을 지지하고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을 보면 소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살았고 그것이 사회정의이기 때문에 옹호한 것이지, 결코 자신의 성공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핀란드인들은 대부분 루터교 신자인데 그는 1960년대에 루터교를 떠났다. 사실 정치를 하려면 종교적인 신앙을 이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는 당시 루터교에서 여성을 목사로 임직하지 않는 것에 반대해 루터교를 떠났고 90%가 루터교 신자인 나라에서 정치인으로 살면서 공개적으로 무신론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 평등주의자다. 동성애자 혹은 여성과 같은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활동해 온 그녀는 퇴임 후에도 다양한 세계적 활동들을 통해 그가 임기 중 국내에서 했던 일을 전 세계로 퍼뜨리고 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예언돼 왔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여성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여성적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 여성적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 여성적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대라고 해석해야 맞을 것이다. 여성적 가치, 여성적 리더십의 전형을 우리는 할로넨에게서 본다. 아픈 사람을 보듬어주고 소심해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을 독려하고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중재하면서 가방 속에서 먹을 것을 꺼내 나눠주는 그런 ‘무민 마마’가, 지난 세기에 군림하고 지배하던 리더를 대치하는 새로운 리더이고 그 전형을 할로넨에게서 보는 것이다.

핀란드는

인구는 2012년 기준 약 542만 명. 면적은 33만8145㎢로 한반도의 1.5배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를 합친 이원집정제다. 국민연합당과 사민당을 중심으로 6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