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97년을 살면서 두번째의 정치비자금 정국을 거치고 있다.

첫번째는 올 3월 측근 박경식씨의 폭로로 시작되어 7개월후인 지난

13일 조세포탈과 알선수재죄로 징역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일단락된

현철씨 비리사건. 두번째는 신한국당 강삼재 총장의 ‘폭로’로 야

기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조성설.

현철씨의 비자금 문제는 사실 94년 4월 한겨레신문이 ‘김현철씨,

대선직전 한약업자 구제 대가로 1억 수수 의혹’을 보도하면서부터

불거져나왔다. 그해 5월 한겨레21은 ‘대통령 아들 김현철은 돈을

받았는가’란 제하로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현

철씨는 한겨레신문의 보도가 명예훼손이라며 서울지법에 20억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재미있는 점은 94년 언론의 보도태도와 97년 3월의 보도태도가 확연

히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현철씨 보도와 관련해 단신

수준으로나마 다룬 언론은 3개사 정도. 나머지 언론은 아예 함구하

고 있었다. 한보특혜비리사건에 현철씨가 깊게 연루돼있다는 의혹이

커져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 시작한 올해초까지 이러한 보도태도는

지속되었다.

특히 경실련의 ‘김현철 비디오테이프’ 공개 이후 각 언론사의 김

현철씨 비리 보도량은 월별 수백건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보도량

뿐만이 아니다. 검찰의 수사를 리드할 정도의 추적보도와 특종이 연

달아 터져나왔다. 이런 보도는 현철씨와 관련된 축적정보가 없었다

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보도 후 3년, 언론은 결코 몰라

서 침묵했던 것이 아니었다.

김현철씨가 한겨레신문을 명예훼손으로 제소한 것과 관련, 94년 기

자협회보는 일선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다. 조사대상 기

자 중 4분의 3(73.2%)이 한겨레 보도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황

이 있었다고 답했다. 한편 일부신문이 이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거

나 다루었다가 축소 내지 삭제한 원인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외압때

문(76.6%)이라고 대답했다. 즉 김영삼 정부의 초기에는 불가능했던

보도가 임기말에는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엔 김대중 총재 비자금조성설 보도를 보자. 집권여당의 총장이

여론조사 결과 지지도 1위인 야당 총재의 비자금조성설을 ‘폭로’

한 후 예상한 대로 각 언론사는 이를 1면 톱으로 다뤘다. 그러나 이

후 언론의 대응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검찰의 수사가 없는 상황, 확

인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주장뿐 아니라 반론도 보도한다는 언론의

기본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것. 덕택에 신문지면에는 두줄

짜리 톱제목이 유행하게 되었다.

과거 여당측 입장만 톱제목으로 뽑던 언론이 야당측 반론도 제목으

로 뽑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태도는 일종의 ‘보험금’이라는 것이 현업 언

론인들의 반응이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쪽에

치우치는 보도는 차기정권과의 관계유지에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

다.

거의 모든 정치행위가 언론을 통해 일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정치권력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권력이 누구에게 얼마

나 집중돼 있는가를 보라. 언론의 정치비자금 보도 감상의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이경숙/언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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