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명감에 사무쳐야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여성신문은 2013 ‘올해의 인물’로 박청수 원불교 교무(㈔원불교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를 선정했다.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10인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지난 40여 년을 원불교 교무로서 한결같이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이런 그의 삶은 양극화의 심화,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갖가지 첨예한 사회적 갈등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 개인이 비록 그가 성직자라 해도 전 세계 53개국을 방문해 소외 계층의 어려운 삶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55개국을 대상으로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쓴 것은 경이로운 ‘기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2007년 정년퇴임 후에도 국내외를 망라해 변함없는 열정으로 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성직자로서도 정상의 반열에 올라 그 개인으로도, 원불교 교단적으로도 뜻깊은 한 해였다. 지난 5월 25일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히말라야 3600고지 인도 라다크에서 열린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라다크 불교협회로부터 수석귀빈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행사는 인도 전역에서 거의 유일한 대규모 불교 행사로, 3만 명이 모였고, 관례적으로 달라이 라마나 림보체 등 불교계의 큰 어른을 귀빈으로 모셔 치러지곤 했는데, 박 교무의 경우는 유일한 외국인이자 여성 성직자로는 이례적으로 귀빈으로 초청됐다.

여성신문의 ‘올해의 인물’은 의미 있는 리더십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정되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한명숙 국회의원, 박근혜 대통령, 이에리사 국회의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역사학자 고 박병선 박사, 일본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박청수(사진) 교무가 2007년 강남교당 교무직을 끝으로 퇴임한 이후 거처로 삼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경기도 용인의 한적한 시골 마을 사암리에 자리해 있다. 2003년 그가 설립한 특성화학교 헌산중학교 뒤편에 아담하게 자리한 그곳엔, 국내외에 9개 학교를 설립한 내용과 함께 31개 컨테이너 분량의 각종 구호물자를 히말라야 라다크, 캄보디아, 인도 불가촉천민, 몽골, 러시아 고려인들, 스리랑카, 북한 등지에 보내고 2개의 구호병원 설립,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 우물 270여 개를 만드는 등 평생 전 세계 55개국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퍼부은 그의 사랑의 흔적이 오롯이 모여 있다.

이 같은 일을 하는 데 소요된 금액은 무려 350억원이라고 했다. 그 많은 일, 그 큰일들을 하고난 박 교무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특유의 소녀 같은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금년 여성신문이 뽑아준 올해의 인물이 어떤 상을 받았을 때보다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절반의 인구인 여성 중에서 으뜸으로 뽑혔다는 사실이, 내가 열심히 살아온 삶을 높이 사준 것이라 여기기에 한평생 고단했던 삶이 위로받는 느낌입니다.”

“너른 세상 나가 많은 이들 위해 일하라”

어머니 말씀 따라 평생 봉사

창밖으로 흰 눈이 병풍처럼 둘러친 그림 같은 정경을 배경으로 그와 마주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그가 일궈온 기적의 비밀을 들었다. 인간의 선한 의지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원동력이란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놀라운 일들을 이뤄올 수 있었던 것은 “한평생 사명감에 사무쳐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히말라야 고지 라다크와의 인연이 참 각별합니다.

“그 시작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 년 중 4개월밖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자연환경 때문에 자식을 교육시킬 시설을 세울 수 없어 1만㎞나 떨어진 남인도 뱅갈루루에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자식을 유학 보내고 10년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 만나지 못하고 사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떨어지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마하보디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또 라다크 설산 사람들은 현대의료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니 그들을 위해 50개 병상을 갖춘 카루나자비병원을 설립했고요. 뿐만 아니라 양로원이나 여성 수도자들의 수도원이 세워지도록 22년 전 10억3000만원을 기부, 달 표면과도 같은 바위사막에 복지시설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번 행사에 지구촌의 오지 교육환경을 시찰하기 위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동행했는데, 불교협회에서 라다크 인재를 양성하는 기숙사를 짓고 있는 걸 아시고, 귀국한 후 그 기숙사가 완공되도록 (1억원이 좀 넘는) 10만 달러를 기탁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되는 일이지요.”

-교무님의 인생에 어머님이 미친 영향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얼마 전인 11월 25일에 어머니 5주기를 지냈어요. 우리 어머니는 27세에 아버지와 사별하시고 우리 자매(청수·덕수 교무)를 기르셨는데, 우리가 자랄 때는 남아선호사상이 절대적이었는데 딸도 잘만 가르치면 아들자식 진배없다고 하시며 불행한 자신의 환경에 대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사셨어요.

6·25전쟁이 터져 매우 어려웠던 때, 남원에서 전주여고를 다닌 사람은 7명뿐이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우리 자매를 전주여고까지 졸업시켰고, 나는 대학원까지 보내주셨어요. 어머니가 ‘너는 커서 시집가지 말고, 너른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그 너른 세상과 그 많은 사람이 나의 인생 화두가 됐고, 그래서 그 길로 두 마음 없이 살다보니 세계 55개국을 돕게 된 거죠.

올해부터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도록을 전문가들과 작업 중인데, 내년쯤 책이 완성되면 전국의 대학 도서관과 국공립 도서관, 박물관 등 2060곳에 배포해 원불교 여성 교역자 발전사의 기록으로 남길 계획입니다. 이 모든 것이 ‘네 일생을 공중사에 힘쓰라’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말씀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선한 일에 기꺼이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고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면 실제로 몸부터 아파옵니다. 결혼은 안 했지만 산고와도 같은 고통도 느끼죠(웃음).

난 통장이 정말 여러 개예요. 캄보디아 통장, 성라자로마을 통장, 히말라야 통장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의 통장부터 만들어놓고 내 돈에서 우선 일정 금액을 넣어놓고 일을 시작하죠. 원불교는 우먼파워가 세고 성평등한 종교라 매주 두 차례 법회 보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죠. 내가 도와주는 55개국 얘기, 가령 병원이 없다, 지뢰가 많다 등의 얘기를 듣고 나면 교도들은 법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은행으로 달려가곤 했죠.

생전 박완서 작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다른 구호기관은 건물비도 내야 하고 인건비도 써야 하는데, 박 교무가 모금하는 돈은 1원부터 전부 다 어려운 곳에 투입돼 실하게 쓰인다고요. 교도들에게 투명하게 보고하는 것은 기본이고, 내 활동에 대한 언론 보도는 내 영수증 발급처인 셈이죠(웃음).”

“어려운 이를 도와주지 못하면 몸이 아파 못 견딘다”

-교무님을 보면 남을 돕는 것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인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은데.

“내가 ‘기록의 왕’이에요(웃음). 1968년 9월 25일 사직교당 시절인 31세 때부터 모든 것을 노트와 캘린더에 빽빽이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다 내 삶의 얘기인지라 하루도 쉬지 않았고, 이 습관 덕분에 밤낮없이 일감을 챙기면서 지금 77세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거죠. 어떻게 시간을 내느냐고요? 출가 이후 TV 드라마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분초를 다투며 살고 있죠.”

-종교를 초월해 30년 넘게 이어진 성라자로마을과의 인연도 인상 깊습니다.

“종교에 내 것, 남의 것이 어디 있겠어요? 다 내 집 일이지. 1975년 처음으로 성라자로마을과 인연을 맺었죠. 사실 돕기를 위한 종잣돈은 늘 작은 금액에서 시작하곤 했는데,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전북 김제 원평교당을 떠나올 때 교도들이 전해준 전별금 4만원을 가지고 성라자로마을 나환자 돕기 출납장을 만들었고, 강남교당을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간 크고 작은 돈이 들어와 마을을 위해 사용한 금액이 1억4000여 만원에 이르게 됐죠. 한때는 돈을 마련하느라 창평엿을 떼어 15년간 엿 장사 아닌 엿 장사도 했어요.

추석 명절이 되면 성라자로마을 식구들을 늘 먼저 챙기게 되고, 물실크라는 비단이 처음 나왔을 땐 그 비단으로 60채 이불을 만들면서 식구들이 이불을 덮을 생각을 하며 참으로 행복했죠. 특히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성라자로마을 봉사 초창기부터 홍라희 여사가 동참하면서 이 일을 계기로 삼성그룹의 기업문화가 바뀌게 된 겁니다. 나환자들의 약은 아주 독해서 설탕물을 꼭 함께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홍 여사를 처음 봤을 때 저 사람은 제일제당 주인이니 설탕 도움을 좀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홍 여사가 굉장히 큰 트럭에 설탕과 밀가루를 가득 싣고 와서 동네방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