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에 처음 한글배워 생애 첫 시집 ‘아흔 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 낸 오금자씨
“삼경을 뒤척이며/ 아흔 두 겹 돌돌 말린 새벽안개/ 경춘선 첫 차가 휘이휘이 풀고가면/ 강 건너 연가 두른 산 아래 하얀 집/ 사계절 나를 빤히 바라보네”(시 ‘하얀 집’ 중에서)
아흔 살의 신예 시인이 탄생했다. 강원 춘천에 사는 오금자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오 할머니가 낸 첫 시집 ‘아흔 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은 오 할머니가 81세에 처음 한글을 배우고 10년 만에 거둔 수확이다.
1923년생으로 일제강점기 한글을 배울 수 없었던 오 할머니는 광복 후에도 대가족 시집살이에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가정 있는 여자가 공부한다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평생 우리글을 배우고 싶은 꿈을 갖고 살던 그는 나이 여든이 넘어 평생교육원 문예반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어두워진 눈과 귀가 발목을 잡았다. 오 할머니는 강원도 삼악산 기슭의 자택에서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홀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쓴 시가 300여 편에 달한다.
오 할머니는 자신의 시를 그저 ‘늙은이의 낙서’라고 낮췄지만 그의 맑고 투명한 언어는 낙서라기엔 한없이 값비싼 느낌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70여 편의 시에는 오 할머니의 자연을 향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지난 세월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를 읽다보면 후회나 비관, 고독에 사무친 노인의 마른 얼굴대신 세상에 늘 감사하는 사랑스러운 소녀가 떠오른다. 오 할머니는 “30여 년간 혼자 살면서 시 쓰는 취미도 없었다면 외로움과 슬픔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중년 여성들에게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하늘 같이 믿었던 남편도 떠났는데 자식은 또 저를 위해 살거든. 그러면 결국 남는 건 나 하나밖에 없어. 그런데 팔십이 돼서야 나를 찾은 거야. 너무 늦어서 아쉬워. 그러니 간곡히 말씀드려요. 자립하세요. 남한테 의지하지 마세요.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살아보니 나를 끝까지 사랑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나는 그 말을 꼭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