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신청에 400여 기업 참여… 288개사 최종 인증
대기업은 이미지 제고, 중소기업은 인센티브가 주효
인증 공시 등 기업 구미 당기는 ‘당근’ 늘어나
세심한 정책 설계·심사기관 객관성 확보·현장 밀착 컨설팅 필요
여성가족부 가족친화기업 인증에 대기업을 포함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올해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은 288개사로 지난해(116개사)에 비해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인증 기간이 지나 재인증을 받거나 기간 연장을 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총 311개사에 달한다. 이 중 대기업도 87개 기업으로 지난해(23개사)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9일 여성가족부 주최로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3년 일·가정 양립 실천대회 및 가족친화기업 포상식’ 행사장은 수상 기업 대표들과 근로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자리에는 행사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도 참석했다. 국정 과제인 일·가정 양립 정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가족친화기업이 많이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인센티브를 발굴하고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에버랜드 김봉영 대표이사, SK C&C 정철길 사장, 한국씨티은행 하영구 은행장 등 기업 대표들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여성가족부가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는 직원들이 일과 가정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탄력적 근무제도, 자녀 출산·양육과 교육지원제도, 부양가족 지원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모범적으로 도입, 운영하는 기업을 평가해 인증하는 제도다.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는 도입 초기인 2009년 15곳, 2010년 23곳에 불과할 정도로 기업들에게 외면받았다. 이미 가족친화제도를 잘 운용하고 있는 대기업은 인증 심사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중소기업은 인증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참여율(2009년 6곳, 2010년 10곳)도 미미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그룹사 중 25곳이 인증을 받았고, 한화그룹도 한화손해사정, 한화 L&C 등 7곳이 인증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그룹도 롯데리아, 롯데카드 등 7곳이 인증을 받았다. 중소기업의 상승폭은 더 크다. 지난해 29곳에서 올해 111곳으로 5배나 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적으로 가족친화 인증에 뛰어든 까닭은 무엇일까.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솔트룩스 이경일 대표는 “업무와 개인, 더 나아가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파격적인 복리후생제도인 힐링 프로젝트를 도입 운영하는 데 시간과 비용의 부담은 크지만, 직원들의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 꾸준하고 지속적인 힐링 프로젝트를 확대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에 발생하는 비용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로 보는 CEO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 김숙자 가족정책과장도 기업들의 참여가 늘어난 원인을 인식 제고와 인센티브 확대로 꼽았다. 김 과장은 “올해 2월부터 지역을 권역별로 나눠 수차례 설명회를 열어 참여를 독려했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발굴한 점이 기업들의 참여를 이끈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각 정부부처에 공문을 보내 인증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를 통해 현재 인증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는 국방부와 조달청의 물품 구매 적격심사 가점과 출입국 심사 우대서비스, 은행의 투·융자 금리 우대 등 77개에 달한다. 특히 지난 7월부터 상장사의 자율공시 항목에 가족친화인증기업의 인증 정보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인센티브 중 하나다. 현재 한솔홈데코, 대성산업, 아시아나항공, LG유플러스, 삼성전기, 한국전력기술, 경남에너지, 포스코 등 19개 기업이 공시를 냈다.
가족친화경영이 실제 기업 성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기업의 구미를 당기는 ‘당근’ 가운데 하나다.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이 수익성, 안정성, 성장성에서 비인증 기업에 비해 높았다. 생산성 증가율도 약 0.22~1.9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족친화인증제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가족친화경영 문화가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려면 기업 현실에 맞춘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가족·다문화정책센터장은 “기업이 가족친화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가족친화경영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며 “가족친화경영문화가 확산되려면 인증제도의 위상 정립, 인증심사기관의 객관성과 전문성 확보, 가족친화지원센터의 현장밀착형 컨설팅이라는 협력체계가 더욱 공고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