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작품에 인종, 젠더 등 다양한 주제 그려
‘황금 노트북’은 페미니스트의 고전이라 불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이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레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5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으며 인종, 계급, 이념, 젠더, 집단, 생명과학 등 시대의 다양한 문제를 생생하고 자유로운 필체로 그려냈다. 그의 사망 3주 전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온 아들 피터가 사망한 사실도 알려져 슬픔을 더했다.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레싱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성장했으며 1950년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로 데뷔했다. 이 무렵부터 영국에 정착해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1973), ‘다섯째 아이’(1988), 집단생활과 개인의식을 주제로 하는 ‘폭력의 아이들’ 연작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미 유럽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했던 그는 88세 되던 2007년, 40대 때 발표했던 소설 ‘황금 노트북’(1962)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최고령 수상자이자 11번째 여성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레싱의 수상작 ‘황금 노트북’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와 불 같은 열정, 통찰력으로 여성의 경험을 서술하며 분열된 문명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황금 노트북’은 ‘페미니스트의 고전’이라고 불렸다. 레싱은 자신의 책이 페미니스트 작품으로 해석되는 것에 반대했지만 그의 작품은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유언 집행자이며 전기 작가인 친구 마이클 홀로이드는 레싱의 작품에 대해 “내용이 풍부하고 혁신적이며 보편적이고 국제적”이라며 “식민지 이후 아프리카에서 핵 권력(nuclear power)의 정치, 여성들의 목소리, 20세기 문명의 정신적 차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려내고 있으며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공감하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두 번 결혼하고 이혼했으며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삶을 통해 전쟁이 끼친 영향을 그린 2008년작 ‘알버트와 에밀리’가 그의 유작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