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의 여군’ 저자 김가령
한국의 여군 직면한 현실, 삶에 대한 관심 조명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여군이 제대로 된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리다 출산 다음 날 사망했다. 만삭 여군 사망사건을 두고 군의 상명하복 문화와 낮은 모성 보호 인식, 낙후된 의료체계가 논란이 됐다. 도대체 무엇이 이 여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이러한 가운데 여군을 재조명한 책, ‘한국의 여군’(형설 출판사)이 출간됐다. ‘국방일보’ 기자 출신인 저자 김가령 씨는 여성이자 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여군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한다. 저자는 군대 내 양성평등문제, 출산육아지원제도 등 ‘국방 여성정책’을 짚어보며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조명한다. 아래는 저자와의 일문일답.
-최근 일어난 ‘여군사망사건’을 비롯해 임신‧출산을 한 여군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을 거라 생각한다.
“이신애 중위의 사망 사건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다. 이번 사건은 그간 모성보호를 위해 여러 제도적 방안들이 마련됐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모성보호 제도’를 각 부대‧개인별 근무 상황에 맞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운영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사건을 가지고 개인의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MBC ‘진짜 사나이’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군에 대해 다루지 않아 아쉽지 않나.
“‘진짜 사나이’라는 제목 자체가 군대를 남성만의 영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사병의 병영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컨셉 상 여군은 애초부터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전 진짜 사나이에서 수도방위사령부 편이 방영됐었다. 여기에 독거미부대라는 주임무가 테러진압인 여군특임중대가 있다. 취재차 본적이 있는데 혹독한 훈련을 바탕으로 실력이 출중하다.”
-취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여군이 있는가.
“사실 이번 책의 주인공인 모든 여군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분 한 분 모두 소중한 선구자들 동반자들이다. 김현숙 초대병과장은 우리 여군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강조하고 싶다.”
-자료 수집에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여군에 대한 자료 자체가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 돼 있다. 기사를 쓰면서도 몇몇 해외 사이트에서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해외 자료까지 충분히 망라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여군의 활약상은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언론의 시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단발성 기사를 통해 외형적 활동상이 전달되기는 하지만 아직은 열악한 여군의 현실과 삶에 대한 관심은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여군의 역사나 여군 증가의 효과를 통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군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불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어떻게 보면 군인이 아니지만 ‘군인 정신’이 발휘됐다. 궁극적으로는 여군과 남군이라는 특성이 아닌 개인이 가진 역량에 의해 관리되고 평가받아야 한다.”
-군대와 여성.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나.
“전쟁을 겪은 우리는 군대와 전쟁에 대해 익숙하다. 여성은 일방적 피해자거나 군인인 남성을 기다리는 존재로 그려져 왔다. 그것이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곰신’만큼 군대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어도 없다. 간혹 여성 영웅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평균적인 여성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한 여성들이 상징하는 것은 남성성일 뿐이다. 하지만 전쟁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들이 수행했던 역할은 놀랍다. 시공간적 조건에 따라 여성도 전투까지 포함해 제 역할을 해 왔다는 말이다. 군대라는 집합과 여성이라는 집합 간에 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지난 한국전쟁 당시 여군의 활동을 생각하면 의외로 이해가 간단한 문제다.”
-개인적으로 군 운영방식이 부러웠던 국가가 있나.
“캐나다 등 영연방국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는 1989년 캐나다인권위원 결정에 따라 잠수함을 제외한 모든 부대 및 직무에 여성이 완전히 통합됐고 여군에 대한 차별이 폐지됐다. 모병, 교육훈련, 진급 등 인사 관리에 있어서 남녀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 또 남녀 임용과정을 통합하여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남녀를 실질적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물론 캐나다 역시 전투 임무 수행에 대한 여성의 적합성과 능력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있었지만 10여년에 걸쳐 여군을 군 문화에 융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노력했다.”
-군 내 양성평등 정착을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정부와 군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비전과 의지, 이를 뒷받침할 체계적이고 전략과 구체적인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영국 해군은 올해 말부터 핵잠수함에 여군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조치는 해군 의학연구소의 2년여에 걸친 연구 결과에 따른 것으로, 여군의 잠수함 근무를 제한할 만큼의 의학적, 사회적, 기술적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군 활용 확대에 대한 선험적 필요성만 강조한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충분한 근거를 축적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정부와 군 당국이 선도해야 한다. 원칙과 기준을 견지하고 다양한 경험과 성과가 축적해 나갈 때 양성평등 정착의 토대가 마련되고 사회 전반의 인식도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