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란 말은 90년대 들어 부쩍 대중화된 대표적 용어이다. 페

미니즘에 대해 아직까지도 부정적 생각이나 거부감, 또는 편견이 완

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의 파급효과와

영향을 수긍하는 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두주자들

의 편견깨기 작업이 험난히 진행되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특

히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 호소하는 예술 분야에 있

어선 효과가 큰 만큼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페미니즘이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면 자신의 예술적 입지가

좁아진다는 우려로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

지 못했던 예술가들중 일찍부터 여성주의적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당

당히 주장, 주목을 끌었던 개척자들이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이들로는 화가 윤석남, 김인순, 사진작가 박영숙

씨. 모두 50대 중반을 넘어섰고 작업실이 서로 지척에 있어 더할나

위 없는 동료로 가깝게 지낸다.

또 이들은 민주화 열기가 거세던 8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여성

자아 표출을 시도, 지금까지 그 작업이 꾸준히 지속돼 오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윤석남·김인순씨는 86년 ‘반에서 하나로전’부터 시작하여 87년 6

개 대학을 순회한 ‘여성과 현실전’을 기폭제로 작품세계의 향방을

분명히 했다. 박영숙씨의 경우 88년 겨울 여성해방시와 그림이 만나

는 ‘우리 봇물을 트자’에 발걸음을 내디딘 이후 92년 고 고정희

시인 추모제로 이 시리즈를 계속하는 한편, 같은 해에 사진, 나무조

각 등의 설치미술로 ‘여성과 현실전’에 윤석남씨와 공동작업을 시

도하고 이후 이 시리즈에 한동안 계속 참여한다.

또한 대안문화운동 단체인 또하나의문화와 여성학의 영향을 가슴으

로 용해시켰고, 이들의 결집된 힘이 88년 창간된 여성신문 초창기에

도 간간이 드러났다는 공통점도 들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 10여년 가까이 예술계의 변방에서 온갖 차별적 시선

을 무시하고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

은 아마도 차별받는 여성현실에 대한 ‘분노’로 인한 강렬한 고발

욕구일 것이다. 작가들로 하여금 ‘발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

실은 경제적 궁핍을 무릎쓰고라도 “땡빚을 내서라도 작품세계를 펼

쳐보이고 싶었다”는 고백을 터져나오게 한 것. 이제 이들이 초기에

집중했던 차별의 현실은 많이 완화된 듯 보이지만, 오히려 더욱 더

교묘한 방식으로 차별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들은 진단한다. 따라서

이들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고발’성 작품세계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작업 초기부터 역설적으로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화단등

에서의 인정을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기에 독자적 노선을 걸었기

때문. 단, 작업 초기엔 집단적 운동성이 뚜렷한 단체전등이 활발했던

반면, 90년대 들어서는 개개 작가의 개성발언이 뚜렷해지면서 ‘각

자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겠

다.

이들의 작업이 지닌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윤석남, 김인순, 박영숙

씨는 이구동성으로 “기존 가부장체제에 젖어 별 문제의식을 못 느

끼는 다른 남성작가들에 비해 아직도 말할 것이 무궁무진하고 뚜렷

하다”는 점을 든다. 바로 이 점이 이들로 하여금 페미니즘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시대언어이며 세기말의 대안이라는 확신 속에서 사명감

을 가지고 ‘즐겁게’ 자기정체성을 계속 담아낼 수 있게 하는 원동

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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