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경의 우생순]⑤태교는 커녕 임신 6개월까지 코트 누벼
[임오경의 우생순]⑤태교는 커녕 임신 6개월까지 코트 누벼
  • 임오경 / 서울시청 핸드볼팀 감독
  • 승인 2013.07.22 19:35
  • 수정 2013-08-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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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세민이는 항상 붙어다녔다. 세민이가 4세 무렵에 찍은 사진.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일본에서 세민이는 항상 붙어다녔다. 세민이가 4세 무렵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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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하고 내 몸만 관리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세민이가 생긴 걸 알고 난 후부터는 달라졌다. 예상치 못한 임신이어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엄마이기도 했지만, 운동선수라 내 몸이 변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동안 해왔던 기본 운동만 하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남편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산모로서 큰 아킬레스건이었다. 적당한 태교도 필요했고, 뱃속 아이와의 소통의 시간도 가져야 했지만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태교와 출산 정보는 모두 한국에서 보내온 책을 통해 습득하는 수준이었다. 먹고 싶은 것이 생겨도 부탁할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출산 후 코트에 복귀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체중 조절도 해야 했다. 배고플 때는 물을 마시며 참았다. 주변에서는 아이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엄마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산모들이 즐겨 듣는다는 클래식 음악 대신 관중의 함성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산모는 과격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임신 6개월까지 코트를 누볐다. 그리고 세민이는 엄마의 핸드볼 열정에 감동했는지 예정일인 일본 종합선수권대회 결승 이틀 전까지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만삭으로 코트에 섰다. 우승을 향한 내 열정은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고, 2000년 12월 17일 열린 결승전에서 내가 몸담고 있던 히로시마 이즈미는 13초를 남겨놓고 슛을 성공시키며 1점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세상에 나온 세민이는 복덩이였다. 어디를 가든 예쁨을 받았다. 낯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곧 세민이를 어디에 맡길 것인가 고민이 시작됐다.

운동선수의 출산은 곧 ‘은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아이를 낳으면서 몸이 망가질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와 무엇보다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코트에서 뛰고 싶었다. 그래서 세민이를 코트에서 키우기로 결심했다. 워낙 개인주의가 심한 일본이라 아는 사람들도 남의 집 딸을 봐주는 일은 흔치 않았고, 제대로 된 놀이방에 보내려면 매달 200만원의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이런 나를 구단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팀 구단주이자 일본인 양아버지 아마시타 이즈미(山下 線)는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다. 애초에 아이를 낳고도 계속 감독직을 맡아달라고 직접 부탁하기도 했다. 구단의 배려에 나는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코트 한편에 세민이 전용 바구니를 만들어 그곳에서 세민이를 키웠다.

몇 시즌이 지나고, 세민이가 유치원에 가야 할 시기가 왔다. 일하는 엄마의 두 번째 고비가 온 것이다. 주로 오후에 훈련을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내 스케줄에 맞춰 세민이와 함께 움직였다. 나 역시 새벽 6시면 일어나 세민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오후 4시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저녁 도시락과 숙제, 샤워 도구를 챙겨 세민이와 함께 훈련장으로 향했다. 내가 못 자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밤늦게까지 엄마를 따라다녀야 하는 세민이를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세민이는 잘 따라와줬다.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엄마가 멋있어 보였는지, 엄마에 대한 신뢰도 또한 매우 높은 편이다. 현재 중1이 된 세민이는 힙합댄스, 미술, 영어 등 자신만의 개척 분야를 키우면서 엄마로부터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세민이가 세상에 나온 지 14년이 흘렀다. 때때로 세민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바쁜 와중에 어떻게 키웠나’ 신기하기도 하고, 내 생활리듬에 맞춰 키운 것에 대해 미안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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