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을지로위원회 현장조사분과위원장 은수미 의원
“최저임금 높여야 여성소득 늘어난다”
“내 의정활동 점수는 50점… ‘노동’ 정치쟁점화 못해”

한여름 폭염 속에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마주앉은 은수미 민주당 의원(50·비례)은 ‘강철나비’란 별칭과 어울리지 않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노동 현안을 짚어나갔다. 노동정책 전문가로 비례 3번에 영입된 그는 총선 당시 남다른 이력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된 후 가오리(가리봉오거리) 봉제공장 노동자로 살았고 박노해, 백태웅씨와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창립해 활동하다 지난 92년 구속돼 6년간 복역한 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투사에서 연구자로, 이제 선량으로.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이력이다. 개인사도 한 편의 드라마다. 캠퍼스 커플과 지난 99년 뒤늦게 결혼했다 이혼했고, 유산도 겪었다. 감옥에 있으면서 결핵과 폐렴을 앓았고, 장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받은 후유증 탓이다.

그의 의정활동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현장의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노동전문가로 갑을관계나 비정규직 노동권 같은 현안을 해결하는 데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서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현장조사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달말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마친 후 크라운베이커리 본사에 항의방문하러 간다고 했다. 크라운베이커리가 파주공장을 폐쇄하면서 가맹점을 축소하고, 불공정 계약을 강요한데 대해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은 의원은 자신의 의정활동이 ‘50점’이라고 야박하게 평가했다. 그는 “노동정책을 쟁점화시켰지만 주력 이슈로 만들진 못했다. 정책을 정치화하진 못했다”고 자평했다. 권리 없이는 일자리도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일부 공감을 얻어냈지만 정치쟁점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자기비판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권이 핫 이슈로 부상하진 못했는데.

“경제활동인구가 2300만 명, 그중 노동자가 1800만 명이다. 지금은 기업,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양 ‘너는 일할 의무가 있고 일한 대가로 얼마 줄지는 우리가 결정해’ 하는 분위기다. 비정규직은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영세자영업자도 비슷하다. 롯데월드나 롯데백화점은 노예계약서를 받고 있다. 롯데가 나가라면 아무 때나 나가야 된다. 인테리어 비용을 수억원 들였는데 6개월 만에 쫓겨났다더라. 지금 자영업자 10여명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상임위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다.

“한국에는 두 개의 전대협이 있다. 슈퍼갑 횡포에 맞서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대리점주협의회, 국가정보원의 폭거에 맞서 정책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다. 요즘 국정원 문제와 을지로위원회 일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년여간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 해결이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은 의원은 민주당 노동임금태스크포스(TF) 간사 겸 대변인을 맡아 노동임금과 관련한 하반기 의정활동 전략을 짜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이윤만 늘리는 차가운 성장이었다면 이제는 소득도 늘어나는 따뜻한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고용률과 노동권, 노동소득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에 주력한다면 민주당은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경제성장에 따라 늘어나는 자연증가분 빼고도 110만 개가량의 좋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또 10%인 노조 조직률을 최소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 사회보험도 확대해야 한다. 실업급여를 아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국형 사회부조가 필요하다.”

그는 “최저임금, 통상임금, 차별임금, 체불임금 해결도 필수다. 특히 여성일자리의 상당수가 최저임금에 의해 결정된다. 최저임금을 높여야 여성 소득이 늘고 일자리의 질이 높아진다”며 “고학력 여성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최저임금 받고 아이 분유값도 못 벌어서다.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50%인 5910원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치 통상임금 소급분으로 사회연대기금을 적립해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활용하는 전략도 만들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부터 차별임금이 사라져야 한다. 정규직 시간당 임금이 1만4000원이다. 정부의 시간제일자리는 하루 4시간 한 달을 일할 경우 최소 160만원, 복리후생까지 합치면 200만원가량 받는 일자리여야 차별임금이 해소된다.”

-현장에서 만난 여성 노동자 이야기를 들려달라.

“정부가 바뀐 후 학교비정규직이 지난 2월 계약해지됐다. 추운 날 천막도 없이 농성을 하더라. 매년 계약하고 매년 해지당하고 쫓겨다니면서 어떻게든 살려고 길바닥까지 나왔다던 분들도 있었다. 지하철 가판대에 도넛 가게가 있다. 청년 여성 아르바이트생들이 한겨울에 얇은 옷 입고 서빙을 하다 손에 동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여성운동이 확산됐다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의 문제, 성희롱이나 가정폭력은 덜 개선됐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밤에 술마신 남자들의 성희롱을 잘 응대하는 것이 노하우라고 말하더라. 우리 사회가 이를 보편적인 여성인권 문제라고 여기지 않아 걱정스럽다.”

은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사노맹 활동을 할 때는 여성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는데 6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나는 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성 정치범은 다수이고, 여성은 극소수다. 여사는 더부살이라 운동장이 없었다. 남성 정치범들은 사동을 따로 주고 방문을 열어줘서 서로 놀고 토론하더라. 그 경험이 계기가 돼 소수자나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대 빛나던 청춘 시절 그는 ‘아톰’ ‘강철’로 불렸다.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던 그에게 친구들은 “밥도 안 먹고 건전지로 충전하고 다닌다”며 이런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며 “특히 여성과 소수자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에게 얼마전의 ‘설화’에 대해 물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MB(이명박)정부가 죽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개로 박근혜 정부가 부관참시를 한 것 아니냐. ‘개XX’ 발언을 한 이유다. 평소 조용하지만 열정적이고 눈물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열정이 가끔 슬픔이나 분노로 터져 나온다. 정치적 마스크를 쓸 필요가 있다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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