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성이자 실천하는 민중시인 고정희… 44세에 지리산서 실족사
‘또 하나의 문화’ 주최 매년 6월 고정희 문화제
그녀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누대로 농사를 지어온 가난한 집안의 5남3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 졸업 후 그녀는 광주YWCA 간사, 기독교신문사 기자,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화운동 동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 주축 멤버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펼쳤다. 시단 활동도 눈부셨다. 목요회 동인으로 활동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행동하는 지성이었고 실천하는 민중시인이었다.
고정희 시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첫 시집을 내준 출판사에서 같은 날 ‘지리산의 봄’을 낸 고 시인과 필자를 초대해 출판기념회를 열어준 것이다. 김병익‧김현‧김주연‧김치수, 흔히 ‘문지 4K’로 불리는 네 분도 처음 만났지만 고 시인도 처음 만난 날이었다. 시인의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를 구하기 위해 그간 많은 서점을 들락거렸지만 끝내 실패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주소를 주면 한 권 부쳐주겠다고 하기에 주소를 적어드렸지만 반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서운하기도 하고 시집도 보고 싶어 편지를 한 통 보냈다. 그랬더니 두 번째 시집 ‘실락원 기행’을 부쳐주셨는데 속표지에 편지를 써놓았다. 인도에 다녀오느라 약속 못 지킨 것을 미안해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편지를 드리면서 언젠가 만나면 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제안은 지켜지지 못했다. 고 시인의 부음을 접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초혼제’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란 두 권의 장시집을 낸 바 있다. 앞서 낸 ‘실락원 기행’에는 장시 ‘환인제’가 실려 있다. ‘환인제’와 두 장시집은 굿과 시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한 소중한 작업이었지만 그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시인의 작업은 70년대 탈춤부흥 운동에 이어 80년대에 마당극이 마당굿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중문화의 원형질을 탐구하고 서사적 구조에 의거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겠다는 의도로 행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2000년 동안 갖은 외래 종교의 위세와 일제의 탄압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굿판에 닿아 있다.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무당을 사탄에 버금갈 정도로 혐오스런 존재로, 무속을 광기에 찬 악의 세계로 취급하기도 한다. 판소리와 민요 등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쓰인 ‘환인제’에서 고정희는 무속의 시적 수용을 과감히 수행한다.
‘초혼제’의 1∼3부는 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보여주지만 5부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마당굿의 형식을 도입해 굿 정신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다. 이 시에서 신은 인간의 소원과 현실적 욕구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서 기능하며, 신과 인간은 굿판에서 함께 신명이 난다. 그래서 굿판은 신성한 의례의 장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