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품 수의사 처방제 국내에서 첫 시행
8월부터 97개 품목, 판매액의 15%에 적용

여성건강과 동물복지 첫걸음 내디뎌

오는 8월부터는 일부 동물용 의약품을 구입할 때는 수의사 처방이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한 달 전 수의사·수산질병관리사 처방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지만, 의약분업 때와는 달리 잠잠하다. 사람의 건강이나 업계, 관련자의 이권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것보다는 항생제나 성장호르몬 등 동물용 의약품이 아무 규제 없이 당연하게 사용돼 왔고, 그 자체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해서일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동물용 의약품에 대한 규제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2011년 허가된 동물용 의약품 품목은 총 6314개, 국내 판매액은 5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동물용 의약품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또 미국에 이어 한국은 유전자조작 소 성장호르몬과 경구용 어류 성장촉진제를 개발했으며, 2012년 수출액만도 1억4000만 달러(약 1600억원)에 이른다. 축산농장과 양돈장, 수산 양식장에서는 유전자조작 소 성장호르몬, 돼지와 어류 성장촉진제 등이 뿌려졌고, 그 성분은 동물의 몸을 거쳐 환경과 우리 몸으로 흘러들어 왔다. 동물약품과 항생제 오남용이 문제가 됐지만 이미 다양한 약품이 사용되고 난 후였다.

 

슈퍼바이러스의 출현

항생제를 규제하라

항생제와 호르몬제는 자연의 성장속도를 거슬러 동물을 빨리 성장시키고, 열악한 사육장에서 면역력이 약해진 동물의 질병을 막으려고 사용됐다. 의약품의 목적이 치료가 아니라 이윤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의사 처방이나 허가 없이 어느 누구라도 이 약품들을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에 따르면 2009년 판매된 항생제의 80%는 가축에게 사용됐고, 단지 20%만 사람의 치료를 위해 쓰였다고 한다. 항생제는 한 번 사용되면 결국 토양과 물로 스며들어 내성균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이라는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유전자가 미국의 한 양돈장 폐수에서 근처의 우물로 흘러들어간 일이 있었다. 테트라사이클린은 국내에서도 사용 중인 항생제로, 이번에 수의사·수산질병관리사 처방 대상에 포함됐다. 슈퍼 박테리아가 등장하며 내성균 문제가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치료 목적이 아닌 한 항생제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항생제 이외에도 동물용 호르몬제 역시 사용돼 왔다. 유일하게 양계산업에서는 성장호르몬이 사용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성장호르몬이 닭, 오리, 칠면조 등의 조류의 살을 찌우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동물용 성장호르몬은 유전자조작 기술을 이용해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안전성과 동물복지 침해로 논란이 돼왔다. 젖소에게 투여되는 산유 촉진 호르몬의 경우 체내 성장호르몬(IGF-1)의 수치에 영향을 끼쳐 유방암, 전립선암, 폐암, 대장암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호주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수산용 성장촉진제로도 개발돼 젖소뿐 아니라 돌돔, 흰다리새우, 우럭 등의 양식장에서도 사용됐다. 2011년 국내 동물용 인공호르몬은 68억원, 산유촉진 호르몬은 4억3000만원어치 판매됐다. 또 멕시코, 브라질, 칠레 등 중남미 지역과 아시아 지역에 수출되기도 했다. 여성환경연대에서는 소 성장호르몬 사용이 여성과 어린이, 동물 건강을 해할 수 있으므로 이를 금지하라는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해왔다.

 

다른 나라가 금지한 성장호르몬

우리나라는 사용해도 괜찮나

2011년 중국에서 ‘독돼지 파동’을 일으킨 돼지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은 어떤가.

스포츠 스타들이 몰래 사용하다 도핑테스트에 걸리는 단골 약물인 락토파민은 가축이나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호흡이 빨라지고 말초혈관이 확장되며 신장 기능 이상을 초래한다. 또 인간이 음식을 통해 장기간 섭취할 경우 암, 고혈압, 당뇨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시판되고 있으나 유럽연합,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세계 160개국에선 사용이 금지됐다.

이렇듯 국내에서 사용이 허가된 동물용 성장 호르몬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동물의 신체 리듬을 교란해 유선염, 면역력 약화, 불임, 도태 등을 일으켰다. 유럽연합의 ‘수의사 처방을 위한 과학위원회’는 널리 사용되는 6가지 동물용 호르몬제가 내분비계 교란, 발달 및 면역독성, 발암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6가지 동물용 호르몬제는 에스트라디올, 프로제스테론,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안도로겐, 프로제스틴으로 성호르몬 성분이다. 6가지 성분 모두 이번에 수의사·수산질병관리사 처방 대상으로 지정돼 처음으로 규제가 시작된다.

이번에 수의사·수산질병관리사 처방 대상으로 지정된 동물용 의약품은 마취제, 호르몬제, 항생제, 생물학적 제제, 전문 지식이 필요한 약품으로 97개 품목, 전체 판매액의 15%에 이른다.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됐지만 늦었더라도 동물용 호르몬제와 항생·항균제가 규제된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가 밝힌 대로 향후 5년간 처방 대상 의약품이 단계적으로 확대돼야 하며, 처방 대상 약품을 사용한 경우 소비자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식품 안전과 건강 기준을 높여 유럽연합에서 금지된 동물용 의약품은 국내에서도 금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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