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여성운동에 투신해온 박영숙 (재)살림이 이사장이 17일 소천했다. 박 이사장이 기틀을 다진 한국여성재단 조형 이사장과 한국YWCA연합회 김형 부회장이 쓴 추모글을 싣는다. 

고(故) 박영숙 선생님을 추모하며

“생을 마치는 때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

고(故) 박영숙 선생님은 이 꿈을 좇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과 이 땅의 여성들이 요구하는 역할에 평생 열정을 바치시고, 오늘 새벽 영면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평양에서 출생하시어 만주와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월남하시어 오늘까지 정의와 평등, 인권과 환경 그리고 여성과 생명의 편에서 의로운 리더로 사셨습니다. 1955년 YWCA에서 처음 사회참여를 시작한 선생님은 한반도의 역사적 격변기의 반세기동안 환경단체와 여성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를 설립하셨고, 세상을 떠나시던 날에도 한국여성재단 창립이사장이자 고문,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미래포럼 이사장, 살림이재단 이사장,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살림정치 여성행동 대표로 일하시던 현역 활동가이셨습니다.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셨지만 온 세상을 보듬을 만큼 넓은 품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안아주시고, 변화에 앞장서는 후배 리더들을 위해서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 “내가 뭘 하면 좋을까”라시며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평생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시며 자연과 환경을 소중히 여기신 선생님은 실천하는 지성의 대표이자 큰 언니셨습니다. 늘 미소와 기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부드러운 권위와 카리스마의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해마다 연말이면 며칠동안 밤까지 새워가며 손수 장만하신 음식으로 후배들에게 파티를 열어 주시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이미 암이 진행되어 오른 팔을 쓰지 못하시던 작년 봄에도 손수 음식을 준비하시어 막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여성의원들에게 좋은 사회와 맑은 정치의 디딤돌이 되어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석유자원이 전무한 우리가 전기와 휘발유를 너무 낭비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던 박 선생님은 난방과 전기를 아끼셔서 집안에서도 장갑을 끼고 지내실 정도로 검약하신 분이셨습니다. 또, 2010년 북한에 땔감이 없어 어린애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을 새워가며 목토시 수백 개를 뜨셨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북한에 보내지 못하게 되자 몹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시대의 크신 어른 한 분이 떠나셨습니다. 남녀가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와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만드는 일 등,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많은 과제들은 오롯이 여기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뒤를 이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땅의 딸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살아계실 선생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참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선생님

박영숙 선생님.

영정 사진 속에서 여전히 환하게 웃고 계시는 선생님께 추모의 인사를 드리게 되니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할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몇 년 전, 선생님께 YWCA가 한국여성지도자상을 드렸을 때, 선생님께서는 한국Y에서 받은 훈련이 선생님께 가장 큰 자산이셨다고, 그래서 Y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함께 해주시겠노라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선생님을 떠나보내니 더 많은 일들을 선생님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다가옵니다.

언제 뵈어도 늘 밝고 열정적이고 활기차 보이셨던 선생님이셨기에 이렇게 갑자기 떠나가실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저희들은 아직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뵐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전쟁이 온 나라를 휩쓸고간 50년대 중반 이화여대에서 수학하시던 시절 YWCA를 만나셨고, 한국사회의 재건을 위해 Y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아시고 졸업과 함께 Y 실무활동가로서의 삶을 택하셨습니다. 특별히 올바른 가치관과 비전을 가진 청년들을 키우고, 활동의 장을 열어주고 지원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으셨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3년 이희호 선생님의 뒤를 이어 한국YWCA연합회의 총무로 취임하신 선생님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고 따뜻하면서도 신념과 패기로 똘똘 뭉친 특유의 리더십으로 중책을 감당해주셨습니다. 여성들의 문제에 Y가 적극 나서서 여성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를, 선구자적 여성단체로 책임을 다하기를 늘 기도하며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척해나갔습니다.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 안정적인 활동의 기반과 재정 자립이 필요함을 일찍이 역설하시고, 이를 위해 Y의 회관이 신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제안하시고, 행동으로 옮기셔서 한국Y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관 신축을 시작했고, 지금의 명동 회관이 신축되기까지 큰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Y 활동의 핵심을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여성 지도력, 특별히 청년들의 리더십양성과 소외받는 이들의 인권회복에 두고, 이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Y의 책임과 역할을 항상 강조하고 앞장서 행하셨습니다.

임기를 마치신 후에는 더 넓은 사회로 나가셔서 환경운동가로, 인권운동가로, 정치인으로 일하시면서 Y의 운동과 바른 역할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50여년 전 제가 처음 서울Y에서 실무활동가로 일할 때 연합회의 사무총장으로 처음뵈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지고 소신있고 덕있는 여성운동가의 모습이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Y 바깥에서 개인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의 대열에서 탄압받은 운동가의 가족으로 선생님과 다시 만났습니다. 저의 남편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었을 때, 어려운 상황에 있던 구속자 가족들을 고 안병무 박사님과 함께 돌보시면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따뜻하고 사랑이 깊은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때로는 따끔하게 지적도 하시고, 강한 모습도 보이셨지만, 제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정치인으로서도, 운동가로서도, 투쟁을 앞세우기보다는 따뜻한 밥을 우선 챙겨 먹이시는 살림꾼이셨습니다.

선생님.

참신앙인이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행하는 사람이라 믿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세상이라는 믿음으로 한 평생을 사셨고, 교회를 통해, 단체들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참된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선생님은 복된 신앙인이셨습니다.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에 가신 선생님,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하도록 지켜 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소망하셨던 정의와 평화, 생명살림의 하나님나라를 위해 남아있는 후배들이 힘을 모아 더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어주신 끈을 놓치지 않고 이어갈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환한 미소로 늘 저희와 함께 하셨던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Y 가족들을 대표해서 부회장 김 형이 인사드립니다.

<김형 한국YWCA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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