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가 소망한 정의와 평화 위해 후배들이 힘 모을 것”

 

한명숙 전 총리와 김형 한국YWCA연합회 부회장,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오른쪽부터)가 18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박영숙 재단법인 살림이 이사장 여성추모행사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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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의 대모’ 박영숙 살림이 이사장을 기리는 여성추모식이 18일 오후 4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여성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추모식에 앞서 오후 2시 입관예배가 치러졌다. 분향소에는 이틀째 여성계와 정계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여성환경연대,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두런두런 등 고인이 관여했던 여성단체 후배들이 교대를 하며 빈소를 지켰다. 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선배들이 입관식 때문에 자리를 비워 후배들이 잠시 지키고 있다”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김 대표의 말처럼 영결식장에는 원로부터 중견, 젊은 활동가들까지 여성운동에 투신한 많은 여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 이사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져 장례위원회가 별도로 꾸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미리 유서를 써뒀다고 한다. 박옥희 전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대표는 “유서에서 고인은 ‘화환을 받지 말고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라. 주검은 화장해 달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20억원가량 되는 전 재산은 향린교회에 기부했다. 향린교회는 민주화운동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곳으로 고인의 남편이자 민중신학자였던 고 안병무 전 한신대 교수가 세운 신앙공동체 향린원의 후신이다.

추모식이 열린 영결식장 벽면에는 여성계 후배들이 그를 기리며 쓴 편지와 엽서들이 붙어 있었다.

여성추모식은 박 이사장의 생전 활동을 담은 추모영상 상영, 헌화와 추모사 낭독,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의 추모 노래, 진혼무, 공동 퍼포먼스 순으로 이어졌다. 사회자 최광기씨는 “박 선생님은 ‘왕언니’로 늘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난로 같고, 샘물 같고, 따뜻한 밥이 되어주었다”며 “언제나 현역으로 살고 싶어 했던 그를 기리는 자매들의 아름다운 추모식”이라며 개회를 알렸다.

이어 한명숙 전 총리와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형 한국YWCA연합회 부회장의 헌화와 추모사가 진행됐다.

한 전 총리는 “박영숙 선생님은 1988년 향년 58세에 평민당 국회의원이 된 후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치밀하게 일을 하셨다”며 “박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1989년 12월 여성계의 염원이던 가족법을 정기국회에서 혁명적으로 개정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탱크처럼 일했던 박 선생님의 정치력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운동의 산맥과 같았던 가족법 개정이 가능했다”고 추모했다.

한 전 총리는 또 “박 선생님을 병문안할 때마다 대부분 나라걱정이었다. 특히 여성의 정치 참여, 기울여져가는 시민사회의 복원을 힘주어 강조하셨다”며 “가시기 며칠전만 해도 ‘정치란 참 중요한 것’이라며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 기초부터 단체장까지 여성들을 많이 포진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박 선생님이 가신 다음 우리에게 주어진 첫 과제가 지자체 선거 참여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박 선생님이 열정을 갖고 일하던 당당한 모습, 닮고 싶다. 그리고 항상 손수 밥을 지어 우리에게 먹이시던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을 닮고 싶다. 선생님의 염원을 우리가 받아 꼭 이루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형 부회장은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에 가신 선생님, 이제는 편히 쉬시라”며 “선생님께서 소망하셨던 정의와 평화, 생명살림의 하나님나라를 위해 남아있는 후배들이 힘을 모아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권미혁 대표는 “박영숙 선생님이 한국여성단체연합 초대 부회장을 맡은 인연으로 추모사를 하게 됐다”며 “박 선생님이 가장 잘하신 일은 많은 후배들을 기르고, 선생님의 유지를 잇게 한 것 아닐까 싶다. 근현대사를 꿰뚫어 가르침을 줄 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18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박영숙 재단법인 살림이 이사장 여성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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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식은 ‘사랑하는 언니에게’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조문객들은 평소 박 이사장이 좋아했던 노래 ‘사랑하는 언니에게’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둔 길 나 홀로 두려울 때 다가와 길 밝혀준 언니들 있지/ 험한 길 나 홀로 힘겨울 때 다가와 손 내밀어 손 잡아준 언니들 있지’(하략)라는 노래 가사가 평소 ‘왕언니’로 통한 박 이사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안혜경씨는 울음을 삼키며 추모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어 ‘내가 추억하는 박영숙 언니’라는 주제로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유여원 살림의료생협 사무국장, 오랜 벗 이종옥씨가 고인과의 추억을 회고했다. 유여원 국장은 “살림이재단에서 살림의료생협 공간을 2년반 동안 흔쾌히 내줘서 생협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며 “살림이재단의 큰 딸이 지역에 자리잡아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다. 겨울이면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활동가들의 책상에 놓아준 일이 기억난다”며 감사를 표했다. 유 국장이 “다정하고 따뜻하신 분이었는데 청결함이 남달랐다”며‘자리가 깨끗해야 활동이 잘된다’고 ‘자리론’을 편 분이라고 회고하자 조문객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희영 처장은 눈물의 추도사를 했다. 강 처장은 “얼마전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금방 일어서실줄 알았다”며 “선생님 곁에 있으면서 열정적이면서 품위 있게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뵈었던 날 손수 자료들을 복사하던 일이 기억난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자 ‘강 선생은 더 힘든 일, 더 중요한 일 해야지’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강 처장은 또 “선생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4대강이나 새만금 현장에 가장 먼저 오셨고, 가장 앞에 계시다 끝까지 함께 해주셨다. 몽당연필을 손수 깎아 볼펜에 끼어 쓰셨다. 우리 모두의 큰 언덕이었고, 감히 닮고 싶은 분이자 자랑이었다”며 “선생님 영전에 아직 인사를 못 올렸다. 차마 선생님을 보낼 수 없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멋진 분이었다. 평화롭게 지내세요”라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종옥씨의 회고도 조문객들을 울렸다. 이씨는 “서른여섯살부터 지금까지 함께 투쟁했고,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다. 따뜻하면서도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잘 견디고 참고 열정적으로 일했다”며 이희호 여사의 회갑연 때를 회고했다. 아무데서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아 북한산 밑 남의 농장에서 박 이사장과 함께 신문지를 깔고 음식을 준비해 이 여사의 회갑연을 차렸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들을 감옥에 보낸 후 감옥에 있던 무의탁 재소자들을 위해 내복 200벌을 넣어주기도 했다. 박영숙은 늘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이번에 병들어 아플 때도 ‘이제 일 그만 하고 여행 다니며 삽시다’ 했는데 내말을 듣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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