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장애인 공동체 일궈온 이종만·김현숙 부부
30여 년 장애인 공동체 일궈온 이종만·김현숙 부부
  • 경북 안동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3.05.01 12:46
  • 수정 2013-05-0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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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더불어” 살아 늘 행복합니다
호암상 수상자로 선정돼… 사재 털어 복지재단 만들고 사회적기업 성공시켜

그들을 만나고 실감했다. ‘봉사’엔 희생이나 헌신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먼저란 것을. 여기에 더해 봉사에도 탁월한 재능과 적성이 필요함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더불어 함께 살자”는 의식과 의지다.

호암상 23년 역사상 첫 부부 공동 수상자(사회봉사 부문)로 선정된 이종만(57) 유은(唯恩)복지재단 원장과 그의 아내 김현숙(57) 직업재활교사 부부 얘기다. 이들은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장애인들과 한 가족을 이루어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새싹채소, 국수, 비누 등 친환경 농산물과 관련 상품을 생산하는 ‘초록이슬새싹’이란 사회적기업을 역경을 딛고 성공시켰다. 특히 부부는 1998년 첫 시행된 수화통역사 시험에서 나란히 자격을 취득해 보조를 맞추는 한편, 남편 이종만 원장은 비장애인 목사로선 이례적으로 오랜 기간 장애인 교회를 시무해오고 있다. 2002년 사재를 털어 마련한 유은복지재단은 경북도에선 최초로 장애인 근로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봄비가 보슬보슬 하루 종일 내린 날 이들 부부를 만나기 위해 경북 안동시 남선면 전형적인 시골마을에 자리한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이자 공동체인 재단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마주친 장애인들의 표정은 놀랄 만큼 밝고 활기찼다. 자칭 ‘트로트 가수’라는 한 청년과 일단의 친구들이 밴드를 이뤄 즉석 음악회를 열자 너도나도 노래를 자청하고 무대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들 청각장애, 지적장애, 자폐 증상을 가진 이들이어서 서로 손뼉을 치며 얼굴을 마주하고 미소 짓고 때론 “앵콜!”도 외치며 스스럼없이 즐기는 풍경이 기자에겐 놀라웠다. 흥겨운 이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함께 춤추고 수화로 대화를 나누며 노래하는 부부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이루어가는 행복 공동체, 이곳엔 무슨 특별한 비밀이 있을까.

남편 이종만 원장의 이야기

“문제 제기보다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되고파”

“우리가 부딪치는 온갖 사회문제에 갖가지 문제 제기는 많은데 이를 줄이기 위해 정작 자신의 삶을 헌신하지 않는 게 바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문제 제기만 하다 그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말 것이냐는 다급한 생각이 오늘의 내 삶을 이끌어왔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문제를 제기하는 편이 아닌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아내 김현숙씨를 만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초반 지역 교회 관계자 몇몇이 모여 마련한 행려병자 쉼터 봉사를 통해서였다. 겨울방학을 맞아 쉼터에서 기거하며 봉사하던 김씨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그의 방에서 나는 이상한 숨소리를 들었고,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경을 헤매는 그를 병원으로 급히 옮겨 살려낸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른다. 당시 부부는 이런 삶을 살자고 특별히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동 서문교회 농아학교에서 봉사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이들의 다음 행로는 명확해졌다.

“학교에 다니던 한 초등 3학년 남학생이 겨울방학에 집에 다니러 갔는데, 봄이 돼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 영풍군에 있는 산골 그의 집으로 찾아가 보니 사람이 살 곳이 아니더군요. 천막 같은 허름한 곳에 할머니, 부모, 누나, 남동생 등 여섯 식구가 사는데, 다 농아인이었어요. 아이는 방학 동안 동네 아이들과 놀다 목뼈가 부러졌는데, 말을 못 하니 아픈 곳도 호소 못 하고, 아버지가 시내에서 사온 파스 한 조각 붙이고 누워 있었어요. 목이 뒤틀려 밥 한 술 뜨지 못하고 팔은 앙상하게 마른 채 싸늘히 식어가고…. 아이를 둘러업고 안동병원으로 뛰었습니다. 담당의사의 말이 목뼈가 부러져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인데 이런 경우는 임상 사례조차 없으니 가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럼, 서울대학병원으로 데려가면 살릴 수 있겠냐고 매달리니 그냥 나가버리더라고요. 아이에게 ‘기도하자, 내 말이 들리면 눈을 깜박거려다오. 그러면 아멘으로 알겠다’고 했더니 아이가 힘겹게 눈을 깜박거리더군요. 그렇게 아이를 보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사회를 원망하기 전에 먼저 ‘이종만, 넌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자책감부터 들었습니다.”

부부가 가르쳤던 한 여성 농아인의 비극적인 삶은 장애인 공동체로서의 경제 자립을 절감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대도시 공장에 취직했던 그 여성은 공장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후에 미군 병사를 사귀었으나 버림받고 만삭인 상태로 부부를 다시 찾아왔다. 흑인 혼혈아를 낳은 여성은 아이를 부부에게 맡기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나갔으나 청각장애로 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다리를 잃었다. 부부는 1994년 아내의 특수학교 퇴직금과 지인들의 후원금을 합쳐 장애인 나눔공동체로 의류 봉제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사업은 실패하고 극심한 생활고 속에 외국 이민까지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너무 힘들어 애꿎은 아내에게 ‘이럴 거면 나를 연탄가스 중독으로 그냥 가게 하지 왜 살려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 원로 목사가 그러더군요. 소 주인도 소 잔등에 주저앉을 만큼의 짐은 싣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이 목사가 주저앉을 만큼 공동체의 짐을 지우겠느냐고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당시 공동체에 출근하는 것은 (일감이 없어) 일하러 나오는 게 아니라 기도하러 나오는 것이었어요. 월급날이 제일 괴로웠습니다. 형제들, 친·인척, 지인들에게 돈을 꾸고 보증을 세우기도 하며 직원들의 월급을 줬습니다. 그런데 1999년부터 서서히 일감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2년 후엔 수익을 내기 시작했어요. 모인 돈을 가지고 아내와 용도를 고민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이 장애인 공동체는 계속 이어가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4000평(1만3223㎡) 토지를 구입해 ‘대저택’을 짓고 살게 된 것입니다(웃음).”

이렇게 해서 2002년 복지재단을 세우고, 2004년부터 낙동강 상류 청정 우수 수질의 지역적 특성을 활용, 친환경 농산물로 사회적기업 활동을 시작한다. ‘장애인 보호작업장’으로 하면 정부로부터 큰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그는 “장애를 굴레 삼아 비굴하게 살 것이 아니라 땀 흘려 떳떳하게 세금 많이 내며 생산적 사회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소신으로 ‘근로작업장’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새싹 사업은 품질이 신뢰할 만하고 우수해 특급 호텔, 교회 등에 납품되면서 지난해엔 23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장애인 50여 명, 고령자 7명, 새터민 2명 등이 어우러진 80여 명에 육박하는 공동체에선 월 소득 200만원으로 시내에 아파트를 얻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지적장애인 부부들도 상당수다. 공동체 식구들 중 장애인 30여 명과 새터민 2명은 야간대학을 졸업해 학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부부는 집이 없다. 재단 한편에 자신들의 오롯한 공간을 마련했을 뿐이다. 그들 사이엔 아이도 없다.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만약 내 아이와 장애인 식구의 아이가 같이 걸어가다 동시에 두 아이가 넘어지면 내 아이부터 일으켜 세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죠? 이런 자문 앞에 스스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공동체 현실이 부모로서의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서로 10년 후쯤 상황이 안정되면 아이를 가져보자 말하곤 했는데, 오늘까지 왔네요(웃음).”

아내 김현숙 교사의 이야기

“장애인 복지의 꽃은 ‘직업재활’… 치유 향해 가는 여정”

김현숙씨는 공동체의 ‘대표 엄마’다. 그의 ‘자식’은 갓난아기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 다양하다. 아이를 안 낳기로 양가에 약속하고 결혼한 그이지만, 아이가 생긴 여성을 위해 분만실까지 동행, 그 고통을 수화로 통역해주는 등 공동체의 친정엄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한다. 때론 입덧, 무기력 등 임신으로 인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장애인 가정이 있을 때면 새벽에도 쫓아가 수화로 자세히 아내의 상황을 남편에게 이해시킨다. 장애인 부부의 비장애인 아이가 유치원, 학교에 입학하면 학부모를 대신해 교사를 찾아가 “완전한 침묵 상태에서 수화로만 엄마 아빠와 대화하며 살아야 하는” 아이의 가슴 아픈 현실을 이해시키며 아이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부탁하곤 한다. 교사가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면 교사가 아이를 이해하게 될 때까지 집요하게 설명을 거듭하곤 한다. 장애인 부모 때문에 기를 못 펴던 아이들도 그들 뒤에 그가 있는 모습을 보면 어깨를 한껏 펴곤 한다.

“아이가 유치원만 들어가도 ‘엄마, 니 왜 말 못 하노?’ 하고 타박해요. 청각장애 엄마들이 가슴을 치며 울곤 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늘 엄마 아빠에 대한 ‘동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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