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다역 ‘슈퍼우먼’… 여의사는 괴롭다
1인 다역 ‘슈퍼우먼’… 여의사는 괴롭다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3.04.24 14:54
  • 수정 2013-04-24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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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엄두도 못 내… 우울증·스트레스 심각
기혼 여성 전공의 10명 중 3명 “자녀 원치 않아요”

의료계에서 여성 파워가 커지고 있지만 여의사들은 다른 직장 여성들보다 훨씬 더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엄마와 아내, 며느리, 딸까지 1인 다역을 하다 우울증을 앓거나 만성 스트레스를 겪는 일도 흔하다. 특히 한국여자의사회 조사결과 전공의들은 기혼 여성 10명 중 3명이 자녀를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나 여의사들의 저출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 8만7668명 중 여의사는 1만9604명(22.4%)에 이른다(2012년 기준). 세계여자의사회 차기 회장인 박경아 교수(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는 “의료 현장이 치열해 기업에 다니는 워킹맘들보다 더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밤에 집에 있다가도 응급 환자가 있으면 뛰어나가야 하므로 일과 가정을 병행하려면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며 “보육과 교육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의사들 사이에선 ‘1등 하는 아이는 아버지가 의사, 꼴찌인 아이는 엄마가 의사’라는 말도 있다. 보통 엄마들처럼 못 해준다는 스트레스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여의사들의 자살률은 보통 남성보다 5배 이상 높다는 외국 조사결과도 있다. 일반인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의사들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직장어린이집이다. 하지만 직장어린이집을 짓지 않은 병원들이 적지 않다. 어린이집이 있어도 정원이 태부족한 데다 의사들의 근무 시간에 맞춰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부지와 교사 확보 등 예산이 많이 들지만 여의사들의 복지를 위해 병원들이 어린이집 개설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육아휴직은 법적 권리인데도 이를 쓰는 의사들은 찾기 힘들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는 “27년간 의사로 일하면서 육아휴직을 쓰는 의사를 한 명도 못 봤다. 과별로 의사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면 ‘펑크’나기 십상이다. ‘이러니까 여자가 싫지…’ 하는 말이 나올까봐 엄두를 못 낸다”며 “의사 연수 때 계약직 전문의를 대체인력으로 채용하듯 의사 중심의 대체인력이 뒷받침돼야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공의들은 높은 노동강도와 불규칙한 근무환경으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 실효성 있는 출산정책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임신한 전공의들이 수련 기간 중 불규칙한 근무와 당직으로 잠을 제때 못 자는 등 모성건강을 위협받고 있다”며 “3개월 출산휴가 의무화 규정을 지키지 않는 병원은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 특히 2명 이상 출산 시 추가 수련 규정은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 중심의 대체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힘겹게 일·가정 양립을 하지만 남성 중심 조직문화 속에서 ‘유리천장’은 여전해 주임교수나 학회장직에 오르는 것은 ‘산 넘어 산’인 형국이다. 더욱이 기획조정실장, 부원장 같은 주요 보직에 오른 여의사는 극히 드물다. 김 교수는 “10년 전부터 빗장이 풀려 지난해 기준 서울대의대 전체 교수 594명 중 여교수는 153명으로 25.8%를 차지한다”며 “임상·진료교수로는 많이 임용되지만 주임교수나 학회장에 오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능력만큼 관계가 좋아야 하는 것이 병원 문화다. 수직적 성향의 남성과 달리 여성들이 인맥 구축에 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료계가 능력 있는 여의사들을 발탁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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