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사는 박 당선인이 국민에게 철석같이 약속했던 것들이 줄줄이 깨진 것
이제부터라도 ‘국민감동 우선의 정치’ 펼쳐야… 가장 상식적인 게 가장 감동적

박근혜 새 정부의 첫 내각과 청와대 수석 이상 인사가 마무리됐다. 전반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무난한 인선’이란 평이 나오지만 자신의 수첩에만 의존하면서 전문성을 중심으로 ‘아는 사람, 써본 사람을 다시 쓴다’는 박 당선인의 독특한 인사 스타일이 새삼 확인됐다.

이번 인사에 대해 상당수 국민은 “정상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정 대학과 고등학교 출신이 너무 많고, “영혼이 없다”는 관료 출신이 대거 기용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인선된 총 30명(내각 18명, 청와대 12명) 중 절반이 고시 출신이다. 성균관대와 고교 평준화 이전 최고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기고 출신이 각각 7명이다. 이런 인사 편중으로 인해 ‘성시경 내각’(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이 대거 기용돼 ‘고소영 내각'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과 유사하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박 당선인이 그동안 국민에게 철석같이 약속했던 것들이 줄줄이 깨진 것이다. 먼저 국무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책임총리제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이 깨졌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책임총리제에 대해 묻자 “대통령을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정 총리 후보자가 소신을 갖고 부처 장관들을 통솔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따라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  후보자를 접한 민주통합당은 “책임총리인데 비서총리 수준에 순응형 ‘네네 총리’가 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혹평했다.

둘째 대탕평 인사 약속도 사라졌다. 박 당선인은 대선 때 ‘국민 대통합’과 ‘대탕평’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하지만 인선 결과는 이런 약속과 거리가 멀었다. 첫 내각·청와대 인선의 절반이 ‘박근혜 캠프’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친박 측근이 5명,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또는 선대위 출신 인사가 10명이나 차지했다. 지역 안배에서도 실패했다. 30명 가운데 수도권 11명, 영남 9명, 호남 5명, 충청 4명으로 ‘영남 편중’을 벗어나질 못했다. 특히 핵심 요직은 영남권 인사들로 채워졌다.

셋째 인수위원의 본업 복귀 약속도 깨졌다. 인수위 출신 9명이 내각(4명)과 청와대(5명)에 들어갔다. 당선인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이정현(정무팀장), 조윤선(대변인) 전 의원과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정복 장관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12명이나 된다.

넷째 경제민주화 실천 약속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7월 대선 출마선언에서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로 ‘경제민주화 실현’을 첫째로 꼽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라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전형적인 시장론자인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내정했다. 그는 평소 “경제민주화는 (재벌 때리기식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근본인 공정경쟁”이라는 신념을 밝혀왔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실천의지가 크게 후퇴한 상황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목표에서 ‘경제민주화’를 제외했다. 5대 국정목표는 ‘일자리 창출과 창조경제’ ‘맞춤형 복지’ ‘안전 사회’ ‘신뢰에 기반한 한반도 안보’ ‘창의교육 문화국가’ 등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섯째 여성 대통령 시대에 걸맞은 여성 인재 중용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내각에는 조윤선 여성가족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2명에 그쳤고, 청와대 인사 12명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박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여성공약으로 여성 장관 및 주요 정부 요직에 여성 비율을 확대·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 여성 리더를 육성해 5년 내에 10만의 여성 인재 풀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첫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이 보이지 않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인사 편중에 빠지면 당선인이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을 스스로 파기하면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게 된다. 정국 주도권마저 빼앗길 수 있다. 국민은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제부터라도 ‘국민감동 우선의 정치’를 펼칠 것을 주문한다. 가장 상식적인 것이 가장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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