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육아 3중고 몸이 축난다” 71.8%
우울증 겪는 워킹맘도
소화장애·두통 시달려
김씨는 “가장 큰 어려움은 ‘대체 인력’이 없다는 것”이라며 “워킹맘이 가사를 돌보지 않으면 아이들이 밥을 못 먹고 집안도 엉망이 된다. 쉬고 싶을 때도 쉬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몸이 피곤해서 도저히 집안일을 못할 때는 외식을 한다. 김씨는 “아이들이 바깥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도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 우울감이 높아졌다며 말끝을 흐렸다.
워킹맘은 우울하다. 일과 가정, 육아 등 3중고에 시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지난해 8월 만19세 이하 자녀를 둔 30·40대 워킹맘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워킹맘 고통지수’ 조사 결과 워킹맘의 71.8%는 ‘일과 가정생활 병행으로 몸이 축나는 것을 느낀다’고 답했다. 자녀양육 컨설팅 기관인 듀오차일드가 지난해 전국의 워킹맘 1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한민국 워킹맘 스트레스’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전체 응답자의 88.9%(176명)가 ‘우울함을 느낀다’고 답했고 ‘잦은 짜증’ ‘만성피로’ ‘심리적 부담’ ‘소화장애’ ‘두통’ ‘무기력증’ 같은 스트레스 증상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남매를 키우는 대기업 팀장 김미경(45)씨는 “우선 체력적으로 힘이 달린다. 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 야근도 자주 하는데 집에 가도 일이 산더미다. 청소하고 빨래하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사나’ 싶어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특히 자녀 교육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워킹맘들이 많다. 김현경씨도 큰딸이 고교에 입학한 후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지거나 학습 태도가 나쁘면 마음이 곤두박질한다. 김씨는 “아이들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몸이 피곤해서 지칠 때면 사표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표를 낼 수 없는 처지라 우울감이 나날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더욱이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가 되면서 직장은 ‘전쟁터’가 됐다. 시간에 늘 쫓기는 워킹맘들은 자기계발 시간을 충분히 내기 어렵다. 다른 동료에 비해 한발 뒤처진다는 불안한 마음이 있다. 똑똑한 후배들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눈치도 보인다.
워킹맘들이 육체적·정신적 피로감에서 다소나마 벗어나려면 남편과 주변 사람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짜증내거나 투정은 부려도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서툰 경우가 많다. 문요한 더나은삶정신과 원장은 “남편에게 ‘왜 이렇게 집안일에 무관심하냐’고 화낼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은 일찍 들어와 아이와 놀아달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욕심이나 기대도 적당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워킹맘은 ‘슈퍼우먼’이 아니다. 문 원장은 “중요 순위를 잘 따져 덜 중요한 일에는 에너지와 시간 투자를 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