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어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삶의 희망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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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80년대 최고의 뉴스 앵커로 꼽혔던 신은경(55·사진) 전 아나운서가 최근 차의과대 의료홍보영상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신씨는 “50을 훌쩍 넘긴 나이에 중간에 일을 그만뒀던 여성으로서 새로운 직업을 시작할 수 있어 기쁘다”며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는 것만이 저의 무기가 될 수는 없다. 진짜 실력 있는 교수로 학생들을 멋진 나무로 키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그가 맡게 될 의료홍보영상학과는 의료 전문 커뮤니케이터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서구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세분화되며 헬스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각광받고 있어요. 의료인과 언론, 국가와 국민, 국가 간 의료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죠.”

신씨는 1980년대를 주름잡은 대표 여성 앵커였다. 그가 뉴스의 앵커를 처음 맡은 것도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일이었다. 1981년 5월 입사한 그는 신입사원 연수를 하던 중 당시 결혼으로 공석이 된 여성 앵커 자리를 맡게 됐다. “처음 뉴스를 시작할 때는 회사도, 저 자신으로서도 모험이었어요. 무난하게 긴 시간 뉴스를 진행해 다행이었죠.(웃음) 첫 방송에서 신인이라 날씨와 해외 소식 두 가지 뉴스를 진행했을 뿐인데 너무 긴장해서 등에 비가 내리는 줄 알았어요.” 점점 실력이 쌓이며 뉴스 비중이 늘어나 그는 1987년 주말에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했다. 당시 여성이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는 앵커를 하면서도 늘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었는데 오래, 많이 하고 싶었어요.” 앵커 생활을 하면서도 외국어대 통번역 대학원에 다녔고, 휴직을 하고 1992년 영국으로 가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1년 열심히 하고 국내에 들어와 학위를 마칠 생각이었는데 막상 공부를 시작해보니 언제 끝날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왕 시작한 것 학위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해 회사에 사직서를 냈죠.”

1995년 영국 웨일스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꾸준히 강의와 특강에 나섰지만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95년 함께 뉴스를 진행했던 박성범 앵커와 결혼을 발표하며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박성범 앵커는 아내와 사별을 했고 그와 18살의 나이 차이가 나 신씨의 팬들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갔다. 정치에 발을 딛게 된 남편을 보며 그는 남편을 위해 뜸을 배워 지역 노인분들에게 뜸을 놔주고, 말과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15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남편이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이번에는 그가 직접 나서려고도 했다. “앵커를 하는 동안 예쁜 옷을 입고 웃으며 방송에 서지 못했던 게 아쉬웠던 적이 있었어요. 항상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뉴스만 진행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12년 동안 저에게 신뢰감이 쌓였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저의 한마디는 의심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큰 사랑을 되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정치를 통해 되돌려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교수로서 되돌려드릴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가장 힘들 때는 어두운 터널에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중에 당신은 KBS 앵커가 될 거라고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 터널에 있을 때는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터널, 긴 터널이 있지만, 터널 끝에는 항상 빛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힘들어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그런 삶의 희망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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