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표성 수준의 참담한 현실 직시하고
‘준비된 여성 대통령’ 약속 지켜야

정치권에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복지공약 등을 중심으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공약 속도 조절론이 나왔다.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공약은 가능한 한 지키면서도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발전 방향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응이라도 하듯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개별 공약의 수준이 서로 다른지, 중복되지는 않는지, 지나치게 포괄적이지 않은지에 대해 분석하고 진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가 최근에 실시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경제·재정 분야의 전문가들의 72%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약 중 상당 부분을 수정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선공약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나’를 묻는 질문에 전문가의 60%가 ‘상당수 공약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했고, 12%는 ‘모든 공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행의 필요성이 가장 낮은 공약으로는 ‘가계부채 대책’과 ‘소득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을 지적했다. 공약 재원 마련 방안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서는 80%가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무상 급식,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무료 진료, 장애인연금 기초연금화 등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134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세금 감면 축소 등을 통해 53조원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나머지 81조원을 무리 없이 조달할 묘안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재정 분야의 전문가들은 새 정부 5년간 증세나 적자국채 발행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의 최대 규모를 75조원 미만으로 추산했다. 75조원은 당선인이 세출 구조조정, 복지행정 개혁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134조원의 약 56% 수준이다.

여하튼 “예산 현실과 정책 균형을 도외시한 공약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과 학계의 지적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박 당선인이 ‘약속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당선인이 “선거 때 내놓은 정책을 다 집행하면 확실히 망할 것”이라는 여론과 “약속한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는 딜레마 사이에서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재원 확보 문제와 상관없이 본인의 실천 의지로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지켜 절대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국민에게 약속한 여성 대표성 강화를 통한 실질적인 성평등 국가의 초석을 쌓는 것이다.

국제의원연맹(FIU)에 따르면 현재 한국 여성 국회의원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함해 47명(15.7%)으로 세계 190개국 중 105위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배출됐지만 여성의 입법활동 참여율은 세계에서 중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낮은 것은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활동에 여성들이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이 17대 10명(4.3%), 18대 14명(5.7%), 19대 19명(7.7%)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18대 국회에서는 16개 시도 중 오직 4곳(서울 대구 경기 전북), 19대 국회에서는 17개 시도 중 6곳(서울 부산 대구 광주 경기 전북)에서만 여성 지역구 의원이 배출됐다.

지난해 각 부처 산하 위원회 위원 7585명 중 여성은 1949명으로 25.7% 수준이었다. 새 정부는 이 비율을 최소 30%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여야 의원 62명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기업 여성 임원 비율을 3년 내 15%, 5년 내 30% 이상으로 늘어나게끔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차별 구조를 해소하고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법안 발의의 배경을 밝혔다.

아직까지 여성 대표성 강화 정책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여성 대표성 수준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대선 때 약속한 여성 공약을 차질 없이 즉각 이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약속이 지켜지고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위상도 더불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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