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여성 영화인 외면 여전

미국 최대의 영화상인 제85회 아카데미상 각 부문 후보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됐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이 작품상과 감독상 등 12개 부문에 올라 최다 부문 후보를 기록했으며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11개 부문에 올라 뒤를 이었다.

올해 후보 리스트는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자인 벤 에플렉과 전미비평가협회 감독상 수상자인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탈락, 저예산 영화인 ‘비스트’의 작품상 후보 지명 등 이변을 낳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전부터 줄곧 지적되어 온 여성 영화인에 대한 외면이 계속되어 미국 여성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2월 24일 개최되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중 눈에 띄는 여성 후보를 살펴본다.

최연소·최고령 후보 배출한 여우주연상

다큐멘터리 부문 여성 영화인 약진

여우조연상 부문에서는 ‘레미제라블’의 앤 해서웨이가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차지한 데 이어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라 우위를 점했다. 쉰이 넘은 나이에 파격적인 노출연기를 감행한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의 헬렌 헌트, 최다 부문 후보작인 ‘링컨’의 샐리 필드가 그 뒤를 쫓고 있으며 ‘더 마스터’의 에이미 애덤스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재키 위버도 후보에 올랐다.

다큐멘터리 부문에선 감독은 아니지만 재능 있는 여성 제작자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에스텔 피알론과 필리파 코와르스키가 제작에 참여한 ‘더 게이트키퍼스’와 니콜 스톳이 공동 제작한  ‘서칭 포 슈가맨’이 후보에 올랐고, 미국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을 옮긴 ‘또 다른 전쟁’은 유력한 수상작으로 꼽힌다.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는 5편의 후보작 중 ‘이노센테’ ‘킹스 포인트’ ‘라신에서의 월요일’ 등 3편이 여성 감독의 공동 연출작으로 눈길을 끈다. 한편 여성 팝스타 아델은 ‘007 스카이폴’의 주제곡으로 주제가상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정치 스캔들로 비글로 배제 충격

감독 촬영 편집 각본 등 여성 전무

특히 지난해 주요 영화상의 감독상을 휩쓸었던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후보 탈락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는 작품상, 각본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감독상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이번 감독상 후보 리스트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고문을 이용한 취조 내용이 삽입된 것에 대해 일부 상원의원들이 비난을 가하며 감독에게 정보를 제공한 CIA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등 정치적 스캔들로 확대되자 아카데미 위원회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글로의 후보 탈락 소식은 큰 반향을 이끌어내 후보 리스트 발표 이후 이에 관한 뉴스와 논평이 쏟아졌다. 롤링스톤지의 영화평론가인 피터 트래버스는 아카데미 위원회를 향해 “비글로에게 감독상(허트 로커)을 한 번 주었기 때문인가? 78년 만에 첫 여성 감독 수상자가 나온 바 있으니 후보에 올릴 필요조차 없다는 것인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여성영화 사이트 ‘인디와이어 위민 앤 필름’의 멜리사 실버맨은 “아카데미 위원회 371명 중 여성의 비율은 9%에 불과하다”는 LA타임스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백인 남성 위주의 위원회를 비판하고 “올해의 아카데미 영화상은 여성들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