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빈슨이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을 때 지지도는 2%에 불과했다. 의원내각제에서 우여곡절 속에 당선된 로빈슨을 두고 한편에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다른 한편에서는 ‘턱걸이 대통령’이라는 조소를 보냈다. 그러나 임기 중반 무렵, 지지도는 93%에 이르렀다. 그녀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취임을 위해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 5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름도 같은 메리 매컬리스가 뒤를 이으며 세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메리 로빈슨과 메리 매컬리스. 20세기에도 19세기적 규범과 사고에 머물던 보수적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에서 낙태와 이혼에 대한 두 여성 정치인의 입장은 엇갈렸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참여와 역할 확대 이슈에서는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성인지적 정책을 견인해냈다. 

한국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진보와 보수여성계의 불편한 간극을 풀어내는 일은 이제 당선자의 몫이 되었다. 보수와 진보, 여와 야, 중앙과 지방을 아우를 명분과 전략도 적지 않다. 내각 구성의 여성 할당 및 선거캠프 안팎을 망라한 탕평인사와 더불어 범여성계가 합의할 공약 대탕평을 이루어가야 한다. 첫 여성 대통령의 젠더정치 쇄신이 한 예다. 여성정치세력화와 연계된 후보들의 공약을 적극 수렴해 실천하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참여경선 법제화, 비례대표 밀실공천 의혹 해소, 공천 금품 수수 시 과태료 부과 및 공무담임권 제한 기간 20년으로 연장, 부정부패 사유로 재보궐 선거 발생 시 원인 제공자의 선거비용 부담을 공약했다. 문재인 후보는 비례대표 100석으로 증가, 지역주의 정치구조 타파를 위한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 상생의 정치 실현을 위한 여야정책협의회 구성을 제안했다.

한 전직 여성 비례대표 의원의 “돈 한 푼 안 내고 비례대표 의원이 된 나는 무수리였다”라는 최근 인터뷰 내용은 정계와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짐작되던 일이다. 첫 여성 대통령의 젠더정치 쇄신 첫 과제는 20여 년 여성운동으로 힘들게 일궈낸 젠더정치의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비례대표 공천헌금 관행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야당 후보의 비례대표 의석 확대와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 공약도 중앙과 지방의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해 적극 검토해야 한다.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 젠더정치 쇄신과 공약 대탕평으로 메리 로빈슨과 메리 매컬리스와 같은 성공한 여성 정치인들의 릴레이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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