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제 의회민주주의 질식시키고 있는 대선
정당과 의회 기능 확대·발전하는 정치 개혁해야

민주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가 우리나라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정당제 의회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행사가 되고 있다. 한동안 정당은 권력자가 선거를 치르기 위한 수단으로 창당되고 존재해오더니, 근래에 와서는 대선 시즌이 시작되면 정당이 존재감마저 사라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후보는 당원을 무시한 채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국민참여경선제)를 통해 선출되고, 후보가 선출되면 후보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선거캠프를 차리기 때문에 정당은 들러리 역할조차 못하고 마비되고 마는 것이다. 의회는 평소에 실질적인 토론의 장을 정당 대변인들 간의 장외 정치에 넘겨주고 거수기 역할만 해왔는데, 대선 때가 되면 아예 의회 죽이기가 기승을 부린다. 후보마다 엄청난 선심성 사업공약들을 쏟아 놓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은 깊이 있는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선거캠프에서 급조되고, 국민적 합의가 불명확한데도 불구하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를 추진하려고 권력을 집중하기 때문에 의회를 들러리로 만들거나 의정활동을 파행으로 몰고가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들고 나온 안철수 후보에게 많은 국민이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안 후보는 정치개혁을 표방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치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절묘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 없이는 대선 승리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안 후보 측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정치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안 후보 측은 후보 단일화 협상 중단을 통해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통합당의 실세들을 집단 사퇴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개혁의 방향이다.

지난 18일 오후 문·안 두 후보가 발표한 소위 ‘새정치공동선언문’은 많은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실망과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정당개혁안으로는 중앙당 조직과 정당 국고 보조금을 축소하며, 공천권을 국민에게 반환하고 기초 자치단체 의원의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의회 개혁안으로는 예결위 상시 운영과 비례대표 비율 확대라는 긍정적인 안도 담고 있지만 의원 수 감축안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것은 대체로 그동안 안철수 후보가 주장해오던 것과 동일한 내용으로 정당과 의회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과 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그 기능 자체를 아예 축소하자는 발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특정인의 깨끗하고 참신한 정책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활동할 정당과 의회의 기능을 바로잡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정당제 의회민주주의는 현재 전 세계적인 대세다. 정당과 의회는 밉고 잘 못한다고 없애버리거나 축소해야 할 기구가 아니라, 확대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제도다. 지금 우리는 그동안 정당과 의회를 발전시키려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개혁은 정당과 의회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발전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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