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버락 오바마가 재선되기까지는 여성들의 지지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젠더 갭 현상(Gender Gap·사회 여론이 남녀 성별로 갈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와 밋 롬니의 남성과 여성 유권자 간 지지율 격차는 18%포인트(p)로 지난 2008년의 44대 대통령 선거의 12%p보다 높았다. 그만큼 여성들의 지지가 높아졌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55%가 오바마에게, 44%가 롬니에게 투표했다. 남성들은 52%가 롬니, 45%가 오바마에게 투표해 여성들의 지지율이 오바마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08년에는 오바마가 53%로 승리했으나 남성 지지율은 49%, 여성 지지율은 56%였다. 이번 대선에선 연령 갭도 확실해 30대 미만 젊은 여성 중 60% vs 37%로 오바마를 지지하는 비율이 롬니의 두 배를 넘었다. 인종별로는 흑인과 라틴 여성의 젠더 갭이 백인 여성에 비해 높았다.

원래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민주당을 더 지지하고 남성은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여성들은 임기 중인 대통령을 더 지지하는 경향이 꾸준하게 있었다. 이러한 경향을 강화시킨 것은 오바마가 여성정책에 집중해 온 결과다. 미국은 지난 70년대 이후 개방적 성문화의 영향 아래 흑인 등 저소득층 미성년 소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하고 미혼모가 되거나 빈곤에 빠져 사회복지로 연명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됐다.

지난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에 획기적인 판례를 내렸다. 여성은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재생산권리가 대선에서 주요 이슈가 됐고 지난 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평등권 수정안을 포기하고 낙태문제를 다뤄 남성들로부터 19%p 이상 지지를 더 받으면서 젠더 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수파 공화당은 태아도 생명이며 낙태는 살인 행위라는 입장에서 낙태를 불법화하려고 했고, 롬니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태아 생명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성교육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미혼모 지원을 강화하지만 소녀들이 출산을 원치 않는 경우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 선택권으로 국가가 불법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성폭력으로 임신을 한 피해자의 경우 원하지 않은 아기를 낳아 길러야 한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오바마는 피해자나 사회 약자의 입장을 보다 이해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공화당 후보 리처드 머독은 여성이 강간으로 임신하는 경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 여성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율법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문제를 본 것이다. 미주리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토드 에이킨은 인터뷰 중 사회자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하느냐”고 질문하자 “진짜 강간(legitimate rape)이라면 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실언으로 상대 민주당 여성 후보 클레르 맥카스킬에게 대패했다.

오바마는 낙태문제에 대해 후기 낙태는 반대하지만 여성 생명이나 건강과 직결된 예외사항은 인정하는 입장이다. 2007년 도입된 ‘예방 우선 법(Prevention First Act)’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은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예방 서비스와 피임, 건강정보의 접근권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의료혜택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시설이 낙후된 지역에 찾아가는 의료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여성의 안전한 직장생활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공정임금제 부활법을 도입하고, 1년7일의 유급 상병 간병 휴가를 장려했다. 유급휴직제도를 위해 주정부에 15억달러씩 지원했고, 방과후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정부 재정 지원을 두 배 인상했다. 저소득 가족의 아동보육비용을 아동 1인당 3000달러에 한해 50%까지 환불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안을 통해 여성 종업원의 피임 비용을 보험으로 지불하도록 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롬니는 이에 반대하면서 피임수술을 제공하는 가족계획병원에 주어지는 연방정부 자금 지원을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여성 입장에서는 오바마가 고통 받는 여성들의 입장에 서 있고, 롬니는 이를 정죄하는 율법적인 입장으로 보인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활용해 공화당이 ‘반여성적’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성공했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