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옥이네 집은 어디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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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성옥은 성균관 건물 건너편 커다란 은행나무를 쳐다보았다. 은행잎은 더러 가장이가 노랗거나 누렇게 몸피를 오그린 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노란 단풍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성옥은 나무 앞의 긴 의자 끝에 앉았다. 차가운 기운이 엉덩이에 스몄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들고나는 학생들의 모습이 줄을 잇고 있었다. 성옥은 그런 얼굴들을 바라보며 왜 꼭 만나야 한다고 했지? 보글거리는 웃음기가 가득 고인 목소리로 누나를 꼭 만나야 한다던 남혁의 목소리를 되새겨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뭔가 즐겁지 않았다. 남혁이가 여자를 데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라던 바였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더 이상 성옥을 여자 친구라고 우기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남조선 남자 Y’를 미워하고 시기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누나야 일찍 왔네!”

성옥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소리에, 그 말의 억양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싱글벙글 웃는 남혁의 얼굴이 눈앞에 가득 찼다. 성옥은 반사적으로 히익 웃었다. 하지만 곧 남혁의 곁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눈길이 달려가서 붙박였다. 가벼운 화장기, 긴 머리, 치마와 티셔츠 차림이 교정에서 흔히 보는 여학생의 모습이지만 단번에 알아차렸다. 탈북자. 그 순간 성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남조선 사람과 똑같이 생긴 한 민족이라도 무언가 같아지지 않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건 ‘문화 차이’라고 여성 탈북자를 돕는 단체의 세미나에서 들었었다. 탈북자인 발제자는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제도와 남한 사람들의 의식의 전환을 기대한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들을 때 성옥은 숙연했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느껴지도록 아주 짧은 틈이 생겼다. 그 틈을 비집고 남혁이가 성옥이를 불렀다. 팔을 뒤로 뻗어 등 뒤에 서 있던 여성을 잡아당겼다. 여성이 멈칫하며 남혁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누나야, 내가 미처 말 못 했다. 나랑 같이 살 사람이다. 영숙아, 인사해라. 내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다. 그 누나 알겠지?”

남혁이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영숙이라고 합니다.”

영숙이는 다소곳이 허리 굽히고 인사했다. 백두산 줄기 뻗어 내린 함경도 북방의 억양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 그 싱싱한 억양을 듣는 순간 성옥의 가슴 밑에서부터 서러움이 빛처럼 솟구쳤다. 성옥은 아래위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아프게 악물었다. 그러면서 눈으로 웃음 지었다. 남혁의 얼굴에 말로 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안개처럼 피었다.

“누나 잘 살란다. 누나가 살려낸 목숨 끝까지 잘 살아보겠다!”

무슨 의미였을까. 남혁은 비장하게 낱말을 하나하나 방아 찧듯이 말했다.

“그래, 두 사람 잘 어울린다.”

성옥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친구 딸이다. 한 동네서 살았다는데 본 적은 없다. 난 학교도 안 다니고 꽃제비로 살았으니 만나지 못했다.”

남혁이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성옥은 들을 수 없었다. 성옥이가 한마디 하면 침묵이 무겁게 들이차고 그 침묵을 들어내듯 남혁이가 한마디 하면 다시 침묵의 바윗덩이가 세 사람 사이에 놓이곤 했다.

“결혼식에 누나 올 거지?”

남혁이가 말했다.

“그렇게 빨리?”

성옥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곤 후회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영숙의 팔짱을 끼었다. 영숙이가 미소 지었다. 소녀 같았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함경도의 싱싱한 기운이 아직도 풀풀 풍기는 영숙. 남혁이가 좋아할 만한 처녀라고 성옥은 생각했다. 언제 왔느냐, 어떻게 왔느냐, 식구들이 다 왔느냐, 고생하지 않았느냐, 자리는 잡았느냐, 어느 지역에 아파트를 받았느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느냐… 묻고 싶은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모든 질문의 해답은 남혁이었고 또 두 사람의 결혼이었다. 더군다나 바로 이때 성옥의 휴대폰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통화할 수 있어?

Y였다.

순간 성옥은 만세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른 때 같으면 문자를 검색하는 성옥의 휴대폰을 악착같이 들여다볼 남혁이 이번엔 무심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 그 놈인가?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어디세요?

성옥은 문자를 보냈다. 문자가 날아가자마자 벨이 울렸다.

“잠깐만.”

성옥은 두 사람에게 말하고 두어 발짝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Y와 만날 약속을 하는 동안 남혁의 여자 친구는 성옥이가 미인이라고 말했다. 통화를 끝내고 성옥이가 다가왔다. 조금 전과는 달리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두 사람 잘 살아. 우리가 넘은 죽을 고비들을 잊지 마….”

남혁이가 울렁거리는 목소리로 힘차게 말했다. 남혁이 솟구치는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고맙습니다.”

영숙이가 말했다. 남혁이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금방 눈이 빨갰다. 눈물 많은 사내 녀석. 성옥이가 보았다면 가차 없이 이렇게 나무랄 것이었다.

그러나 성옥은 남혁의 눈물을 보기도 전에 골목길로 달려가서 큰 길을 건너 다시 골목을 달리고 길을 건너고 골목을 달려가며, Y가 말해준 장소로 갔다. 그를 만나지 않는 동안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서 어떤 회답을 기다리는지 잘 알았다. 그의 아내가 되어서 그를 내조하는 일을 그려본 것이 천 번도 넘을 것이었다. 그를 위해 함경도 음식을 만드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도 셀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성옥은 생각했다. 결혼이라니. 그 장면, 그 모습은 찢어버리면 없어지는 사진 한 장 같았다.

그런데 지금 숨 가쁘게 달리는 성옥은 황홀했다. 저만큼 앞에서 네온 불을 밝힌 카페의 간판과, 우윳빛 빛이 가득한 유리벽의 너울너울한 그림자를 바라보는 성옥의 가슴은 황홀로 쿵쿵 뛰었다.

황홀의 방망이에 가슴을 찧기는 건 성옥에게만 나타난 증상이 아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급하게 다가오는 성옥을 바라보는 한 남자 Y도 그랬다.

그래, 성옥이다!

저 여자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그를 수렁과 천상으로 곤두박이게 하던 한 사람. 행복과 평화를 상상하게 하던 여자. 바로 성옥이었다고 그는 알아냈다.

성옥이야, 저기 성옥이가 오네!

Y는 이렇게 말하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성옥이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지금껏 경험한 적이 없어서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고 타인에게 알려줄 수도 없는 감정이었다. 억지로 표현하자면 저 여자는 나다, 이런 정도일지 몰랐다.

성옥은 숨을 가쁘게 쉬며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별일 없었지?”

그가 출렁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잘 지내셨어요?”

성옥이가 대답대신 이렇게 물었다. 순간 Y는 왜 저런 말을 하지? 생각했다. 어제도 만나고 아침에도 만나고 점심에도 만났던 사람이, 왜 새삼 저렇게 말하지? 거의 이런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우선 밥을 주문하고 맥주도 주문했다.

“좀 야위었네.”

Y가 말했다.

“선생님도 그래요. 그건 다 마치셨나요?”

성옥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기억해냈다.

“한번 가볼까? 바다가 좋으니까.”

그가 말했다. 성옥의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성옥이 술잔을 들며 마주 든 그의 잔에 부딪쳤다. 그런데 갑자기 성옥은 울게 될 것 같아 입술을 앙다물었다. 어처구니없었다.

“저는 다시는 못 만나는 줄 알았어요.”

성옥이가 기어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그래도 눈은 웃고 있었다.

“그런 게 어딨어.”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성옥은 입술을 적시고 내려놓았다.

“내가 바라시는 걸 하나도 못 해드리잖아요.”

“괜찮아.”

“….”

“이렇게 가보자. 가보는 거지 뭐.”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바로 이때 왜 성옥은 그의 말을, 살자, 살아보는 거야, 이렇게 들었는지 몰랐다.

두 사람은 거의 몇 분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그랬다.

“우리가 헤어질 수 없다는 거… 알지?”

Y가 갑자기 말했다. 성옥이가 그를 쳐다보았다. 왜? 왜요? 그 얼굴에 이런 의문부호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설명할 순 없어.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 있네.”

Y가 말했다. 그리고 성옥을 응시했다. 성옥은 처음으로 그의 눈이 아주 깊고 맑다는 걸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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