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을 위해 산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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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Y에게 수복지구 기념관을 설계하는 일은 이제 불타기 시작한 열애 같았다. 그가 지금까지 해 본 일들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어떤 건축을 설계하더라도 똑같은 경우는 없었다. 개인의 주택이든 공공건물이든 빌딩이든 마찬가지였다. 마치 유일한 개성들처럼 건축주와 공간과 욕구들이 하나같이 달랐다. 이렇게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개성과 욕구와 조건을 살피고 헤아려서 하나뿐인 특성, 개성 등을 찾아내는 건 건축가의 안목이었다. 직관과 영감이 움직여 찾아내는 특수성과 보편성에서 아름다운 공간건축이 생겼다. Y가 이 일로 얻는 수익에 좌절하지 않고 사로잡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념관의 도면은 쉽게 되지 않았다. 아무리 밤을 새우고 자료를 들춰 보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끔, 추정수 계장은 그저 안부가 궁금해서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진척이 잘 되어 가십니까? 설계만 끝나면 공사는 언제든지 앞당길 수 있습니다.”

추정수는 허허허 웃으며 묻고 말했다. Y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쉽지 않네요.”

Y가 담배 연기를 뱉으며 이렇게 말하면 저쪽에서 놀라는 기색이 밀려왔다.

“설계가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추정수의 의문과 놀라움이 그대로인 목소리가 들렸다. Y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 쉬고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곳의 날씨가 어떤가, 요즘 시장엔 어떤 것들이 나오는가, 어젠 무엇을 했는가, 등등.

그러던 어느 날은 새벽에 불쑥 일어나 차를 몰고 동해로 달렸다. 새벽안개가 걷히는 고속도로를 지나 바다가 바라보이면 그는 차창을 내렸다. 동쪽 수평선에선 검정과 보라와 주황과 자줏빛들이 뒤섞여 얽히고 있었다. 우주의 진통 같은 변화무쌍이 느껴지면 그는 아직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바닷가 횟집 앞에 차를 세우고 모래밭에 나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삼팔휴게소에 주차하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 그래서 잠깐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화장실을 사용할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할지 몰랐다.

더군다나 그가 모지항 바닷가에 앉아 건너편 시모노세키와 보이지 않는 먼 청진항을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것이 과거라면 이곳은 현재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 때문에 그는 잠을 자다가도 문득 눈을 뜨고 불현듯 차를 몰아 이곳에 오곤 했다. 물론 단 한 번도 추정수 계장을 불러낸 적은 없었다. 추정수 계장보다 그를 불러내는 건 성옥이었다. 그는 전화로 말하지 않고 메일도 쓰지 않으면서 늘 성옥에게 말했다. 여긴 바다야. 이 해변에서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청진항이야. 아버지와 자전거 타고 다녔다는 바다는 청진항보다 더 가깝겠지? 어디라고 했더라? 이런 식이었다.

방금 Y는 우측 입면도를 완성했다. 자연이 스스로 만든 환경조건을 바꾸지 않고 그곳에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소장의 건축철학과 다르지 않은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언덕을 깎아 내리지 않고 언덕을 그대로 살려서 건물을 얹어야 했다. 동쪽을 향한 정면은 바다를 품거나 바다에 안길 것이고 반대편 측면은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정기를 덮을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낸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추억, 역사는 기념관 안팎을 넘실거리는 대기(大氣)이고 시간이고 생활일 것이었다.

오늘 오전 내내 씨름한 도면에 Y는 만족스러웠다. 그는 오후 3시가 다 되어 때늦은 점심을 주문했다.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짬뽕은 기다리지 않아도 빨랐다. 그는 붉은 짬뽕 국물을 마시며 어느 날 이른 새벽 기사문리 수평선에서 진통하던 일출을 떠올렸다. 그의 눈가에 미소가 어렸다. 성옥이는 뭘 하지?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릇을 내려놓을 때 전화가 통째 와그르르 진동했다. 이파리. 이런 글자가 떴다. 얼마 전, 성옥이가 자신을 성옥이란 이름 대신 ‘이파리’로 바꿔달라고 한 뒤 그렇게 한 이름이었다. 그날 그는 이파리라는 느낌이 싫었다. 왜 하필 이파리? 그가 물었다. 성옥은 대답하지 않고 시무룩하더니 자신이 이파리 한 장 같다고, 그렇지 않으냐고 되물었었다. Y는 그런 성옥의 마음을 위로하려드는 게 모욕일 것 같아 그저 성옥이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바꿔 입력해뒀다.

“신기하다, 내가 방금 너 생각했는데 정말 안 거야?”

그의 목소리는 반가움과 흥분이 뒤섞여 높고 높았다. 그런데 정작 저쪽은 침묵이었다. 한숨 소리까지 들렸다. 그는 걱정이 됐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팽개쳐질 것 같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있니?”

그가 물었다. 그는 성옥의 지친 한숨 소리를 다시 들었다. 

“만나주세요.”

성옥이가 망설이듯 말했다. 순간 그는 자신의 등을 잡아당기는 힘을 아득히 멀게 느꼈다.

“무슨 일 있구나!”

그가 다그쳤다.

“만나주세요. 부탁이에요.”

성옥이가 그랬다. 만나달라거나 그걸 부탁한다거나 하는 말은 성옥이가 해본 적이 거의 없는 말이었다.

“그래, 나도 좀 쉬어야지.”

그가 말했다. 그는 프린트해 둔 도면을 바라보며 도면에게 말하듯 뱉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약속했다. 성옥의 학교 앞, 언젠가 둘이 가 본 적이 있는 찻집이었다.

성옥이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수복지구 기념관이며 기사문리와 삼팔선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가 손에 든 건 그곳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쓴 수기였다. 북한이었던 그곳에서 인민군 장교로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 낙동강에서 패잔병으로 후퇴하다가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들어간 아버지. 그곳에서 남한을 선택해 국군이 되었다가 원산사범학교의 학력이 인정되어 고향에서 교사로 살았던 아버지. 휴전 후 북한으로 갔던 아버지의 사촌이 간첩으로 남파되어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글쓴이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는 사관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간첩 삼촌 때문에 지방대학의 약대를 졸업하고 약국을 경영하며 살아온 것. 아버지의 인생이 슬퍼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자비로 수기를 펴낸다는 후기까지 그는 대충 읽었다. 추정수가 준 참고 자료에는 없지만 그가 술김에 들려준 참혹하고 슬픈 삼팔선 이야기는 많았다. 몇 가지 사례를 듣고 그는 넌더리가 나서 더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 넌더리 나는 이야기들이 잊히지 않았다.

성옥은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얼굴이 까칠해 보였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기를 보고 다가오는 성옥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성옥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죄송해요.”

성옥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또 뭐가!”

그가 퉁명스레 물었다.

“모든 게 다 그래요.”

“나한테 잘못한 게 있어?”

그가 자못 진지하게 물었다. 순간 성옥이가 정색을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눈가에 흐릿한 그늘이 져 보였다. 성옥은 대답하지 않고 왼손의 검지 마디를 물어뜯었다.

“아! 그 친구 어떻게 됐어?”

순간 Y는 번개처럼 의문이 떠올라서 큰소리로 물었다. 성옥이 입술을 안으로 밀어넣어 깊게 물었다.

“잘못됐나?”

그가 물었다. 성옥이가 고개를 푹 떨궜다. 그는 죽은 북한 여자를 생각했다. 압록강을 건너다가 어머니는 강 중간쯤에서 행방불명이 되고 혼자서 살아남아 한국에 왔다는 성옥의 고향 친구. 한국의 연예인 송혜교를 좋아하고 닮았다는 말도 들어서 이름도 혜교라고 했다던 성옥의 친구. Y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성옥은 벌 받는 아이처럼 깊이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말해봐.”

Y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전신으로 밀려오는 피로를 느꼈다. 수복지구 기념관 때문이었다. 그가 사로잡히고 몰두했던 수복지구 기념관엔 전쟁이 나던 그해 여름부터 몇 년 후의 또 다른 여름, 휴전까지만 담겨 있지는 않았다. 그해 여름으로 오기 전의 수많은 세월이 있어야 했고 또 다른 여름, 휴전 이후의 세월이 담겨야 했다. 그 모든 지점에 성옥이가 어른거렸다. 도면을 그리고 또 버리고 다시 그리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수염도 깎지 못해 덥수룩하고 야위기까지 한 그가 마침내 도면과 도면 사이의 공간들을 느낄 무렵, 그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던 땅의 사람들과 그들의 조상과 삶의 내력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줄담배를 태웠다. 그해 여름 6월 25일부터 휴전이 성립된 그해 여름의 7월까지 그곳엔 살아남은 사람이 죽거나 없어진 사람보다 적었다고 했다. 이념을 앞세운 권력의 야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념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이념으로 쌀 한 톨 지어낼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으로 죽고 살아야 했던 수복지구 사람들의 한(恨)을 느낄 때, 건축가 Y의 손에서 설계도면이 완성되었다.

Y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머리를 휘저었다. 아직 성옥은 고개를 숙인 채였다.

“혜교가… 갔어… 없어졌어요.”

이윽고 성옥이가 느리게 망설이며 무언가를 감추려 애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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