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을 위해 산다 (2)

 

 

Y는 모니터의 설계도면에 몰두하다가 잠깐 쉬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불현듯 놀랐다. 갑자기 성옥이가 사라진 것이었다. 왜? 어떻게?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사라진 성옥의 형상을 찾았다. 성옥은 그의 손끝에 있었고 그의 마음에 있었고 그의 숨소리 속에 섞여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랬다. 성옥이가 그의 상상력에 스며들고 그의 손끝에 어리고 숨결에 섞이면 일이 부드럽게 풀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마음에 간직된 무형의 수복지구 기념관은 아무렇지 않게 직사각형의 모니터를 떠났다. 언덕 아래엔 드넓은 바다, 구불거리는 해안선, 크고 작은 건물들, 직선으로 내달리는 4차선의 동해고속도로, 그 아래로 추억의 흔적처럼 남아 있는 오래된 길들 속에 놓이는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랬다.

Y는 두 팔을 추켜들었다. 의자 등받이를 한껏 밀어 윗몸을 젖혔다. 굳었던 근육이 우두두둑 풀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 자세 그대로 그는 몸을 한껏 돌렸다. 허리가 뻐근하도록 그랬다. 오른편 벽에 그가 흘려 쓴 글자를 적은 종이가 펄럭거렸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은 그 결과가 좋다.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바람은 좋은 뜻으로, 에서 결과가 좋다, 로 불었다. 이건 소장이 늘 하는 말이었다. 새로울 것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던 것인데 이 일을 시작하며 적어서 붙여놓았다.

지난달 초순 양양에서 돌아와 자료들을 검토한 뒤였다. 소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그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었다. 세상에 일치고 쉬운 일은 없다고 소장은 가볍게 말했다.

“그것도 못하겠다면, 넌 전공을 잘못 잡은 거야!”

잠깐 침묵이 지난 뒤에 소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못 박듯 말했다. 여태 Y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도무지 입을 못 열고 있었다.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가운 물바가지를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누가 그렇게 한 듯이 고개를 추켜들었다.

“요즘 애들은 뭐든지 생각하기를 싫어하니 세상이 천박해지는 거야! 내 말이 틀렸어?”

“아닙니다!”

“그럼 나가 봐!”

“네!”

“나가서 생각해! 니 혼을 불러내!”

“알겠습니다.”

Y는 이렇게 큰소리로 대답하고 인사한 뒤 소장의 방을 나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수복지구 기념관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는데 여전했다.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났다. 소장에게 보여야 할 결과물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 하나가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의 갈등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Y가 소장에게 그런 말을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소장은 그 사이 볼이 파인 그의 얼굴과 움푹 들어가 보이는 눈매며 마른 꺼풀이 인 입술을 살폈다. 소장은 그가 즐기는 엽차를 잔에 따라서 그에게 건넸다. Y가 의미를 해득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처럼 두 손으로 잔을 받아들었다.

“마셔.”

“네.”

“넌 내가 어렵냐?”

“네! 아닙니다!”

Y는 거푸 다른 의미의 말을 했다. 소장이 소리 없이 차를 마셨다.

“내가 뭐랬어. 어려운 일에 재미가 있는 거야. 고민한 만큼 보람이 생길 테니 더 고민하고.”

“….”

“사람들은 고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고통을 기념하는 건 희망을 원하기 때문이야. 전쟁을 뒤집으면 평화야. 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오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봐. 뭔 말인지 알아들었어?”

소장이 말했다. Y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장은 Y로부터 피어오르는 느낌을 간파했다.

“고통이 시작되어야 생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산고(産苦)라고 하잖아.”

“고맙습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Y가 대답했다. 고통이 시작되어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섬광처럼 그의 뇌리를 스친 영감이 있었다. 그건 성옥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을 넘어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움켜쥐고 싶었다.

그날 그는 성옥을 불렀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통화가 되었는데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이야기 했다. 성옥의 목소리가 밀려드는 졸음에 잠겨 음성이 나오지 않아 그만 통화를 끝냈다. 새벽 1시 무렵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소파에 던지고 조용하고도 힘차게 만세를 불렀다. 기쁨이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살아요.”

그는 노트를 꺼내 성옥이가 한 이 말을 적었다.

“이념이란 건 참 시시해요.”

그 밑에 이 말도 썼다.

“평화가 좋아요. 맘 편하게 사는 거, 그게 평화 아닌가요?”

이 말도 썼다. 그리고 성옥. 이렇게 적었다.

성옥이와 통화를 한 이 날 이후 그가 곧장 도면을 그리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공간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그건 고통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고통을 통과한 희망이었다. 희망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것일 터였다.

그는 양양에 다시 갔다. 건물이 들어설 두 군데의 후보지 중에 그가 선택한 것은 양양군 현남면 기사문리였다. 예전에 있었다던 다리. 이름이 삼팔교라고 했다. 삼팔교를 지나는 삼팔선은 아래윗집의 생나무 울타리를 갈라놓았다고 하였다. 이념을 달리하는 두 개의 정치체제가 적대적인 신념과 생활방식을 강제했지만 아래윗집은 예전에 늘 그랬듯이 아무개를 불러 부침개를 넘겨주고 약초나 서양 약을 나눠 썼다고 했다. 아무도 그 다리를 건너서는 안 되었다고 했다.

Y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산으로 바다로 몰래 넘나들다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 잡혀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둔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했다. 이렇게 5년을 살고 전쟁이 나고 전선(戰線)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이곳 사람들은 두 개의 국기를 준비하고 살았다. 어느 날은 이런 국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고 어느 날은 저런 국기를 들고 길로 나가다가 미처 제대로 몰라 엉뚱한 국기를 들고 흔들다가 총에 맞아 죽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다고 했다. 만약 Y가 수복지구 기념관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그런 이야기가 모두 우스꽝스러울 것이었다. 그는 웃을 수 없었다. 웃어서는 안 되는 웃음거리도 있었다.

Y의 진지한 태도를 반긴 건 추정수 계장이었다. 설계라는 게 건물을 짓는 건데 그 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사연들이 필요한가, 그는 놀라워했다. 그리고 Y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곳엔 탈북자가 없습니까?”

Y가 추정수에게 물었다.

“없습니다. 베트남 신부는 몇 명 시집와서 사는데…. 요즘 누가 농사짓는 총각한테 시집오려고 합니까?”

추정수가 말했다. Y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탈북 여성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추정수는 자못 진지했다. Y는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해하곤 슬며시 웃었다. 등잔 밑은 언제나 어둡기 마련이었다. 성옥이가 그랬었다. 자신은 당에서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았지만 정작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해선 남조선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고. 그곳에선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고 믿게 하는 대로 믿으면 그만이었다고. 수령님과 장군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고. 그곳에선 알 필요가 없고 그 존재에 의탁하면 되었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런 말을 할 때 성옥은 탈진한 목소리였다.

“선생님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성옥이가 그랬다. 하지만 Y는 그 이유를 묻지 못했다. 특별한 사람으로서의 자기를 적나라하게 알고 싶지 않았다. 성옥의 생각이 자신에 대한 잘못된 판단일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Y는 수복지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느끼고 그 역사성을 깊이 짐작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 슬픔의 고리를 만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슬픔 속에서 건져내야 할 희망의 모형을 가슴에 그릴 수 있었다.

설계가 시작되면서 그는 성옥이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느꼈다. 방금 그랬던 것처럼 그가 도면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성옥이가 어떤 미세한 기미처럼 그로부터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에 몰두하면 그의 손끝에, 그의 느낌들에, 그의 선과 공간에서 성옥이가 싱싱하고 힘차게 되살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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