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지금은 더 이상 레전드가 탄생할 수 없는 시대”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지금은 더 이상 레전드가 탄생할 수 없는 시대”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2.08.17 12:45
  • 수정 2012-08-17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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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결국 쉬지 않겠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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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K팝(Pop), 아이돌, 오디션 열풍… 바야흐로 가요계의 중흥기인 듯하다. 그런데 전 방위적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53·사진)씨는 오히려 “왠지 모르게 우리 음악이 점점 난쟁이화돼 간다”고 토로한다. 풍요 속의 빈곤, 거대한 시장 한 귀퉁이의 알짜 빠진 빈 틈. 여의도의 한 작은 카페에서 그와 나눈 2시간은 우리 음악의 잊혀가는 본질과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위기, 그래도 버릴 수 없는 희망에 대한 얘기들로 채워졌다.

“지금 우리 음악은 난쟁이로 변하고 있다”

“대중음악이 전 방위에 서서 모든 예술을 대표하던 때는 이미 사라졌다. 음악도 이젠 여러 분야 중 하나로 규모나 범위, 사회적 확산이나 영향력 면에서 참 많이 작아졌다. 음악이 가지는 힘, 특히 치유와 세대 접합의 힘을 믿는다면 이 난쟁이 발육 상태를 잘 조절해 다시 키워내야 한다. 지금으로선 지극히 건강 상태가 나빠진, 영양 불균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는 말끝에 “지금은 음악에 대해 목숨을 거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라고 자조했다. 때문에 좋은 자원과 인력이 훨씬 더 절실하단다. 그의 이 말은 상당한 함의를 가진다.

“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60, 70년대 비틀스, 레드 제플린 등 음악사의 모든 레전드(legend·전설적 인물)를 경험한 우리 세대는 이들을 가슴에 넣는 ‘저장 세대’이며 ‘수집 세대’, 그리고 요즘 세대는 MP3에 원하는 음악을 저장해 놓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삭제해버리는 ‘삭제 세대’, 다양하고 수많은 재밋거리를 찾아내는 ‘소비 세대’라고. 우리 세대가 임방울 선생의 판소리부터 샹송, 칸초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들었고, ‘빽판’(불법 복사한 해적판)을 알았던 세대라면, 요즘 아이들은 아이돌만 아는, 굉장히 협소한 음악적 패러다임을 가진 세대다. 음악을 ‘가슴’ 속에 저장하지 않는데 어떻게 제2의 비틀스가, 제2의 서태지가 나올 수 있겠는가. 더 이상 레전드가 탄생할 수 없는 시대이기에 지금의 아이돌들은 (한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처럼) 끊임없이 과거의 레전드를 재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집중돼 있던 그 시절의 신중현, 조용필, 이문세, 이선희를.”

이 레전드 불임의 시대는 뜻하지 않은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세대 간 문화적 단절 폭이 큰 현실에서 레전드의 재해석을 통한 세대 접합의 가능성 말이다. 가령, ‘붉은 노을’ 한 곡을 엄마와 딸이 같이 들으면서 엄마는 원곡 가수인 이문세를, 딸은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이돌 그룹 빅뱅을 떠올리고, ‘붉은 노을’을 공통분모로 해 그들의 얘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도 레전드의 음악을 들으면 미칠 만큼 좋아하기에” 기성세대가 자신들이 경험한 레전드를 후세대에 전해줄 책무가 있다는 것도 강조한다. 무엇보다, 그의 경험상으로도 음악은 ‘치유’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같은 과로 사회일수록 ‘쉬는 법’을 알아야 하고, 눈이 아닌 귀를 움직여 듣는 음악이야말로 최고의 힐링(healing)이라는 것이다. 그는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결국 쉬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단언한다.

돌이켜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민한” 아이였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 귀가한 아버지 앞에서 트위스트 춤을 출라치면 형과 비교해 자신이 늘 “젬병” 같다고 느끼곤 했다. 심지어 말을 더듬는 버릇까지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저 자식은 심부름 시켜도 어떻게 그렇게 못하는지”라고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고. 그런 열패감에서 그를 탈출시킨 건 바로 음악이다. 특히 자신의 “체온과 맞는” 록을 알게 되고, 핑크 플로이드를 접하면서 그는 이들 음악으로부터 “넌 괜찮아, 잘 해봐!”라는 끊임없는 응원을 받는다. 지금도 그는 “록의 함성이 날 정상인으로 만들어줬다”고 고백한다. 

“록의 응원 함성이 날 정상인으로 성장시켰다”

“한번도 경제적으로 행복한 적이 없었지만 음악적으론 단 한번도 불행한 적이 없었다”고 감연히 말하는 그는 어떻게 음악과 조우하고 또 매혹당했을까.

중학교 시절, 그는 홍콩의 전설적 무술 배우 이소룡의 광팬이었다. 예전 명동 입구에 있던 코스모스백화점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을 기웃거리며 이소룡이 등장하는 스크린, 로드쇼 등의 잡지를 구하다가 자연스레 팝송과 접하게 됐고, 중3 때 고교 배치고사가 끝난 후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4개월여를 쉬면서 춥고, 외롭고, 무서울 때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존 레넌, 로보, 카펜터스, 신중현, 이장희는 말 그대로 그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인생을 바꿔버렸다. 그래서 세운 인생의 목표가 ‘음악평론’이었다. 대학 전공을 택할 때도 이 목표와 제일 가까운 것이 사회학이라 생각해 이를 전공으로 택했고(고려대 사회학과), “팝송 기사를 쓰고 싶어” 경향신문 기자가 된다.

그가 신문사 생활을 접고 평론가로 매진한 지 올해로 21년째다. 그동안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의 매니저란 시험적 시도도 해봤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은 2년째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야무진 마무리를 짓는, 그야말로 실험을 위한 실험으로 끝맺었다. 현재는 고정 방송 출연만도 한 달 10여 회에, 수많은 강연, 심의회의 등으로 개인 비서를 둘 만큼 바쁜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본연의 욕망은 방송용이 아닌 진정한 ‘글쓰기’에 의한 고전적 방식의 평론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력이 깊어질수록 그 갈증은 끝이 없다.

“평론의 핵심은 서슴지 않고 글쓰기라 말하고 싶다. 내 지론은, 글을 잘 써야 말 역시 잘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이미 말할 준비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13년간 부지런히 운영해온 음악 웹진 ‘이즘(IZM)’을 만든 것이라 말하고 싶다. 글은 쓰고 싶은데 쓸 공간이 없다면 얼마나 비참해질지 익히 잘 알고 있기에 평생 글을 쓸 수 있는 내 공간이 절실했다. 그런데, 이 글쓰기야말로 환희와 고통의 끊임없는 동거다. 음악평론은 즐기고 놀이하는 것, 지극히 감각적인 것을 글로 옮겨야 해서 지성과 감성을 조화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간단히 말해 음악 듣기는 지극히 감성적인데, 글쓰기는 지극히 지적이어야 하니, 그 간격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는 이 고통에 마음먹고 푹 빠질 계획이다. 2004년 신중현, 양희은, 조용필, 윤도현 등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 가요계를 풍미한  26명의 대중가수들을 조명한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을 낸 데 이어 조만간 그 후속작으로 이미자, 남진, 나훈아, 이소라, 크라잉넛에 이르기까지 40여 명의 가수를 분석한 ‘위대한 음악 유산’(가칭)을 선보일 계획이다.

“K팝, 기획사 훈육 시스템으로 유지… 티아라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

그는 아이돌이 주도하는 K팝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K팝은 댄스 팝이기에 ‘단기적’이라는 데 불안감이 큰 건 사실이다. 그래도 단군 이래 이렇게 우리 문화가 글로벌화된 적이 없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왜곡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중국, 미국은 물론 유럽, 남미, 중동, 북아프리카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아이돌 댄스 특유의 집단 가무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기획사 시스템의 아슬아슬함이다. 미국, 영국 등 음악 강국들은 인권문제 등의 한계로 우리 식의 소위 훈육 시스템을 절대 가동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은연중 이런 시스템에 대해 사회적 압박이 덜하고 그와 반비례해 일약 성공과 출세에 대한 환상은 너무나 크다. 여기서 바로 K팝 시스템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한창 이슈몰이 중인 그룹 티아라의 왕따 파문은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다. 티아라도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처럼 “조립식 그룹”이 가지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수년 후엔 아이돌 중에서 우울증 환자나 자살자가 속출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예측한다.

“비틀스나 아바는 스스로 음악을 하겠다고 모여든 뮤지션들이었기에 자체적으로 결정력과 정화력, 팀워크가 있었다. 그런데 기획사가 마음대로 그룹 일원을 자를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에선 음악의 중심이 가수가 아니라 자본에 있다. 제2, 제3의 티아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동방신기, 카라, 원더걸스, 박재범 등 그동안 논란을 일으켰던 아이돌 그룹의 공통 문제의 진원지는 바로 불안한 기획사의 시스템이다.

K팝이 좀 더 진전하려면 장르가 한층 다양해져야 하고, 동시에 아이돌이 사춘기를 지나 20대 이후에도 ‘자기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음악적 발현을 차단하지 말아야 한다.”

 

임진모씨의 역작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에 나오는 뮤즈들. (왼쪽부터)“고급 가창의 정점을 이뤘다”고 평가한 패티김, “트로트의 예술성을 꽃피운” 심수봉, “공연사의 한 획을 그은” 이은미. 패티김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라고 말한다.
임진모씨의 역작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에 나오는 뮤즈들. (왼쪽부터)“고급 가창의 정점을 이뤘다”고 평가한 패티김, “트로트의 예술성을 꽃피운” 심수봉, “공연사의 한 획을 그은” 이은미. 패티김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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