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중심대학 지향 “글로벌 파트너십이 곧 차미리사 정신”
1980∼90년대 여성운동의 최전선에서 뛰었던 그는 노무현 정부의 첫 여성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제정이란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2006년 덕성여대 총장으로 부임해 연임한 그는 ‘지킬’(지은희는 칼 같다)이란 별명이 무색할 만큼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창학 92년을 맞은 덕성여대의 미래 비전을 펼쳐보였다.
-유엔여성과 양해각서도 체결했는데.
“이번 대회 주제인 ‘양성평등과 여성 임파워먼트(권한 위임)’는 반기문 총장의 어젠다예요. 반 총장은 한국에 있을 때도 여성 문제에 관심 많았죠. 세계대회는 유엔여성이 한국에서 여는 첫 행사라 의미가 커요. 한국은 여성 권익 향상이나 임파워먼트에서 모델 국가죠. 한국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아시아·아프리카 차세대 여성들이 젠더와 평화, 기업가 정신에 대해 토론하면서 경험을 나누는 게 목표입니다.”
-리더십보다 파트너십을 강조해왔다.
“남녀 관계든 나라 대 나라든, 인간과 자연 관계든 상호 이해와 상호 존중, 동행, 나눔 같은 파트너십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세계대회 참가자 중 장학생들을 받아들여 덕성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는 이유죠. 우리도 벌써 르완다 주재 한국대사관에 인턴 둘을 파견했어요.”
총장실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안온해 보였다. 건물이 4층 이내라 더 그랬다. 지 총장은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으냐”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덕성여대에) 맨 처음 와서 만든 게 야외 카페입니다. 건물은 고 김수근 건축가 작품이고.”
-2020년까지 세계 수준의 교육 명문대학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인데.
“교육 중심 대학 특성화 방향으로 글로벌 파트너십 특성화 대학, 맞춤식 교육, 에코 캠퍼스, 레지덴셜 칼리지(기숙형 대학), 아시아 중심 대학 등 다섯 가지를 내세웠어요. 등록금은 서울에서 가장 싸요. 100만원쯤 다른 대학과 차이 나요. 취업률, 교수 확보율도 다 좋아요. 장롱 약사가 참 많잖아요? 전국의 개국 약사 중 10%가 덕성 출신입니다. 학과별 졸업인증제도 시행 중이에요. 신입생들은 3주일간 기숙사에서 영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합니다.”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 수는 6000여 명이지만 국내 여자대학 중 유일하게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기관평가 인증을 받았어요. 54개 지표를 충족해야 되는데 첫해에 인증을 받은 거죠. 심사관들이 직접 와 보곤 ‘단단한 대학이다. 감동받았다’고 하더군요. 과거 분규 이미지의 잔상이 남아 아쉬운데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요.”
지 총장은 “1∼2학년 때 스무 명씩 세미나 교육을 한다. 문학과 철학 분야 글쓰기와 토론을 한다. 소규모 대학이라 맞춤식 교육이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여성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차미리사 선생이 세운 대학인데.
“어떤 조직이든 훌륭한 정신적 지주가 있느냐, 없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차미리사 선생이 하신 말씀인데 우리 대학에는 그분의 정신이 면면히 흐릅니다. 21세기도 아닌 1920년에 여성 강연단을 모집해 80여 일 동안 전국을 돌며 강연과 모금운동을 했던 대단한 여성이지요. 차미리사 정신을 21세기에 맞게 해석하고 확장한 것이 파트너십입니다.”
-여성운동가 출신 총장이다.
“나는 굉장히 러키한(운 좋은) 경우입니다. 젊을 땐 우리가 목표로 잡은 이슈를 법제화하는 데 기여했고, 이젠 우리가 만든 법이나 제도를 활용해 인재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힘든 일이요? 난 끝없는 낙관주의자예요(웃음).”
그는 여성부 장관 시절 보육의 공공성 강화에 힘쓴 데 대해 뿌듯해했다. 보육이 국가와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지 총장은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로 있는 미혼의 외동딸을 두고 있다. 임기는 2013년 2월까지다. 그는 마을 만들기 공동체 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대안사회운동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걸 보니 여전히 그의 혈관에는 운동가의 열정이 끓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