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개그콘서트’를 즐겨 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네가지’라는 코너가 재미있다. 개그맨들의 입담도 재기발랄하거니와 나의 관심 연구 분야인 ‘소수집단(minority)의 스티그마(stigma) 심리’라는 주제와 연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남성들에 대한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의하면 남성들에 있어 보다 심각한 고민은 ‘능력’과 관련된 측면이다.

‘네가지’에서는 ‘뚱뚱한 남자’ ‘키 작은 남자’ ‘인기 없는 남자’ 등 주로 외모와 관계의 측면에서 부족한 남성들을 사회적 스티그마(낙인)의 대상 집단으로 희화화해서 제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반전이 웃음을 주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실제로 우리 사회의 남성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이전 같으면 남자의 외모와 관계성은 별 문제될 것 없어서 이들은 아마 각각 ‘떡두꺼비같이 듬직한 남자’ ‘나폴레옹같이 크게 성공할 남자’ 혹은 ‘과묵하고 믿음직한 남자’ 쯤으로 달리 간주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남자들도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외모나 관계성으로 인한 고민이 보다 심각하게 됐다는 것이 남녀가 평등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라거나, 남녀 성역할의 역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거나, 그래서 반가운 일로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인정받는 남자의 조건으로 ‘능력’만을 주로 중시했던 이전 세대에 비해 요즈음 젊은 사람들에 있어서는 사회의 편견의 대상이 되어 ‘상처받는’ 요인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과 스티그마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은 학력·학벌 소외자와 동성애자(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1)임에 비추어 볼 때 남자들에 있어서 가장 고민이 되는 측면은 아직도 학력·학벌 등 소위 ‘능력’의 측면이다.

아마도 ‘네가지’ 코너 담당자들이 매우 영리해서 보다 심각한 스티그마를 가진 경우(학력·학벌부족, 동성애자, 장애인)를 소재로 삼으면 너무 무거워지므로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혹시 ‘여자들의 네가지’ 버전을 만든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여자들의 네가지’를 남성들처럼 ‘그래 나 뚱뚱한 여자다’ ‘그래 나 못생겼다’ ‘그래 나 인기 없어 결혼 못 했다’ 등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너무나 ‘아프고 심각한’ 네 가지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고 특히 여자들은 웃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성 응답자의 90.5%가 ‘우리 사회 외모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변한 한 조사(여성정책연구소·2011)의 결과를 미루어 볼 때 말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