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하며 서울 명동 거리를 돌아다녔다. 대낮에 훤히 옥외 조명을 밝혀놓은 화장품 대리점이 있어서 불을 꺼달라고 요청하며 매장 안에 들어섰다. 과도한 조명 때문에 눈이 피곤할 지경이었고 전구들이 열까지 내고 있어서 실내온도는 33℃로 무척 더웠다.

또 다른 매장에서는 사장님을 만났는데, 필자에게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공무원들이 매장을 방문해 오는 7월부터는 출입문을 열고 냉방을 하면 과태료 300만원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는데, 문을 닫고 싶어도 닫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였다. 매장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을 하도록 디자인돼 있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문은 병풍 모양이었고 손님들이 드나들 때마다 여닫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영업을 종료할 때만 닫게 되어 있는 문이었다. 사장님은 “본사에서 매장의 인테리어 기준을 정해준 것이어서 따랐을 뿐인데, 꼼짝없이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본사에서 과태료를 대신 내줄 것도 아니고, 이제 개점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멀쩡한 문을 뜯어버리고 새 문을 달면 그 비용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하소연했다.

그 화장품 매장에는 환경친화적인 제품임을 강조하고 매장 내부도 친환경적인 소재로 인테리어를 했다는 홍보물이 부착돼 있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냉난방을 하도록 매장을 디자인했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 에너지 절약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다.

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난방온도 제한조치가 시행되던 지난 겨울, 공무원들과 명동거리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난방기를 켜놓고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영업하고 있는 매장이 많았지만, 과태료를 물릴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 문을 닫아달라고 요청했더니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을 닫아놓으면 손님들이 다른 매장으로 가게 된다는 것. 당시 필자와 함께 매장을 방문했던 공무원은 “업체 대표들에게 대리점들이 출입문을 닫고 영업하도록 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뒤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해보고 그래도 시정이 되지 않는다면, 출입문을 열고 냉난방하는 곳에도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화장품과 의류업체 대표들과 지난 겨울 에너지 절약 실천을 당부하는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을 닫을 수 없도록 한 매장 디자인도 그대로이고, 출입문을 열고 냉방하는 곳에 과태료를 물리는 조치가 새로 시행되는 것을 보니 상호 소통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소상인들만 큰 부담을 지게 될 상황이라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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