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리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 “내 삶의 키워드는 느리게·단순하게 그리고 고독”
조안리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 “내 삶의 키워드는 느리게·단순하게 그리고 고독”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2.05.04 11:53
  • 수정 2012-05-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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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비즈니스 우먼으로 멘토 역할… 백신연구소 통해 빈국 아동 돕기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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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 2012년 버전을 새로 쓴다면요? 자유의지로 모든 것을 다 해본 사람의 경험으로 성공도 끝이 있고 결국은 다 버리고 가는 것이란 평범한 진리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마치 등산이 단순히 산 정상에 서는 게 아니라 거기서 내려와 집에 돌아왔을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듯 말이죠. 그래서 내 삶의 후반부 원칙을 세 가지 세웠어요. 천천히, 심플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고독을 즐기면서 살기로요.”

90년대 중반 마흔아홉 나이에 큰딸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스물세살 여성들을 위해 스물세살에 시작된 자신의 격정적 삶을 담은 자전 에세이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을 출간, 일약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프로 비즈니스 우먼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됐던 조안리(이조안·67·사진)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 여성의 자기 계발서에 한 획을 그으며 숱한 반향을 일으켰던 그때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이 흘러갔다. 이와 함께 ‘도전’과 ‘쟁취’라는 그의 키워드도 성찰과 평화, 나눔과 감사로 걸음을 옮겼다.

건강문제 통해 성찰, 삶이 변하다

“2000년대 초반 대형 행사를 치르고 홍콩 출국 몇 시간 전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은 후 비로소 철이 난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잦은 다리 부상과 갈비뼈 골절 등으로 고통 받았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2년여를 건강문제로 시달리다 보니 ‘좀 느리게 살자’는 결심이 서더군요.”

2년 전부터는 신부전증으로 신장 투석을 받다보니 행여나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행동도 소극적이 되고, 그러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그동안 회사 일을 정리해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울타리 역의 회장으로 물러앉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열정은 숨길 수 없다. 최근 ㈔여성문화네트워크가 발족한 ‘윈 문화포럼(Women & Culture In Network)’ 공동대표를 맡은 데다가 6년 전부터는 국제백신연구소(IVI) 고문과 한국후원회 부회장으로 제3국 어린이를 ‘근본적’으로 돕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IVI의 목적이 장내·호흡기 감염 등 전염성 질환으로 인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엄청난 사망(5세 미만 어린이 연간 600만 명)과 장애를 줄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소 주체가 과학자들이기에 홍보에 지극히 소극적이어서 연구소의 의미와 중요성이 국민에게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데, IVI는 한국이 치열한 경쟁 끝에 본부를 유치한 첫 국제기구예요. 그동안 영화배우 정준호, 가수 타블로 등을 홍보대사로 위촉했지만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봐요. 에이즈 등 돈 되는 백신은 선진국의 제약회사가 독점해버리고, 장티푸스, 콜레라 등 후진국 질병은 돈이 안 되니 막상 빈국의 아이들이 예방 백신을 맞으려면 20, 30달러가 드는데 어떻게 맞겠어요? 그래서 IVI는 새로운 백신 개발과 기존 백신 공급을 병행해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 1달러 이하로 백신을 공급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빈곤과 질병의 근본적 퇴치를 위해 힘쓰는 기구니 우리 국민이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된 국제기구로 키워냈으면 좋겠어요.”

1990년대 초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시작돼 아시아 여러 국가가 경합을 벌인 결과 1994년 한국이 유치국으로 선정됐다. 현재 40개국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설립 협정에 서명, 회원국(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IVI는 한국 정부에서 부지를 제공해 서울대 연구공원에 연구소가 세워졌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가 꾸준히 후원해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한국후원회 명예회장이 되면서 IMF 외환위기 속에 무산될 뻔한 연구소 건축을 도왔고, 이후 대통령 부인이 후원회 명예회장이 되는 전통이 생겼다. 현재의 회장인 김윤옥 여사는 개인적 후원도 매달 하고 있다고.

“난 자유롭게 사는 게 어울려” 정치권 러브콜 거절

IVI에 앞서 그는 1999년부터 수년간 탈북자들의 국제법상 난민 지위 획득을 위해 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 운동본부에서 대외창구 역할을 한 적도 있다. 당시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1000만 명 서명운동을 벌여 500만 명 서명이 완료된 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인권위원회에 전달했고, 드디어 1000만 명 서명을 달성했을 땐 이를 들고 직접 뉴욕 유엔본부를 찾아가 코피 아난 당시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 이런 노력으로 이후 국제사회가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기점으로 이 운동에서 손을 뗐다.

“1000만 서명 달성 후 운동이 어느 정도 정치색을 띠기 시작했죠. 누군가 ‘극우파’란 말을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순수한 인권문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 흑백논리로 가를 줄은 몰랐어요. 더구나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정부는 탈북자들이 북한 정권의 정치적 사안과는 별개로 보호 받아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건드리지 말라’는 사인을 보내며 냉담했어요.”    

명성 덕분에 그는 정치권으로부터 세 차례 프러포즈를 받았다. 앞서 두 차례는 야멸차게 거절했지만, 김대중 정부 당시 마지막 제의 땐 잠시 고민했었다. 고 강원용 목사에게 조언을 구해도 봤다. 당시 강 목사가 “조안리, 너는 너대로 자유롭게 사는 게 더 어울리고 더 좋다”는 말에 용기를 내 최종 거절했다.

그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서강대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당시 초대 학장이었던 고 케네스 킬로렌(한국명 길로연) 신부를 만나 스물여섯이란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국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허락을 얻어내 결혼식을 올린 영화 같은 로맨스의 주인공이다. 이후 두 딸을 가진 워킹맘으로 세계 최대 PR기업인 버슨미스텔러 한국지사 사장, 전문직 여성들의 국제봉사단체 존타(ZONTA)의 한국 여성 최초 아시아 지역 총재 등을 거쳐 당시로선 독보적인 사업을 시작, 성공을 일구었다. 그가 시작한 스타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국제 네트워킹을 통해 국제 비즈니스상의 난제를 해결하고 고급 인력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 일례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북아일랜드에 한국 공장을 진출시키는가 하면 전투기도 파는 등 종횡무진 세계를 누볐다. 이런 그이기에 후배들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너무 성공에만 집착한다”는 것.

“재작년인가 장학재단에서 주최하는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만난 명문대 여학생들에게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어요. 억눌린 게 참 많고,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거예요. 그 결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했어요. 실패하지 않는 선에서 뭔가를 해보려 하니 결국 뭐가 안 되죠.한번 저질러봐야, 또 직접 해봐야 성공도 알게 되죠. 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 부모들의 과보호 문제가 실감돼 착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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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두려워하는 후배들 안타까워 “저질러야 또 얻지요”

그는 마흔 살에 남편을 여의고도 두 딸을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컬럼비아대, 브라운대)에 진학시켰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큰딸은 CJ엔터테인먼트 미국지사 마케팅 부사장으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제네바에 사는 둘째 딸은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남들은 딸 둘을 모두 아이비리그에 보낸 노하우를 묻는데, 솔직히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입을 딱 다물곤 하죠(웃음). 자기네들이 다 알아서 갔으니까. 유난히 독립적이었던 큰애가 어느 날 ‘내가 반은 한국 사람이고 반은 미국 사람이니 이번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 해서 중학교 때 보냈고, 이후 자연스레 둘째도 언니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공부했어요. 아이들이 너무나 독립적이어서 엄마에게 기대는 게 정말 하나도 없어 오히려 섭섭하기도 해요. 나 역시 아이들에게 ‘엄마가 널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며 무엇무엇을 해줬는데’라는 말을 평생 해본 적이 없지만요.”

그는 평생 “내 사업은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란 생각에 고개를 숙이거나 간청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거만하다”는 평도 들었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엔 워킹우먼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 통념에 대한 냉소가 깔려 있다.

“당시 여성이 사업 전선을 누비며 온갖 곳을 다 간다는 게 남자들 보기엔 익숙지 않았나 봐요. 내가 명함을 안 돌리니까 국제행사에 온 대사관 여직원쯤으로 생각하는 눈치였어요. 그러다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그곳 시장의 초청을 받아 선상파티에 갔다가 당시 상공부 장관을 만났어요. 그 장관이 깜짝 놀라서 그때서야 ‘대표이사’ 명함을 줬더니 눈에 띄게 내 존재를 불편해하는 거예요(웃음). 여성을 동등한 동료로 보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 남성들에겐 고역이었겠죠. 그때보다 지금 여건은 훨씬 좋아졌으니 후배들이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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