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침묵을 강요하는 대신 의견을 묻는 문화로 바뀌어야

정부가 학교폭력 대책을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다시 학생들이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겨울 대한민국을 뒤흔든 학교폭력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교폭력의 심각성도 심각성이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왜 아이들이 그렇게 심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말, 하, 지, 않, 는, 가이다.

2010년 서울시교육청이 체벌금지 조치를 시행했지만 학원, 가정 등 학생들을 둘러싼 공간에선 ‘못된 것을 고쳐주기 위해 말해도 듣지 않을 땐, 즉 맞을 짓을 했을 땐 맞아야 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체벌이 존재하고 있다. 체벌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면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맞으면서 얼굴이 빨개지거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면서 웃기도 한다. 신체 가학이 때론 재미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동의 없이 가해지는 행동의 폭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 피해 학생도 처음엔 어느 것이 선의로 빌려주는 것이고, 어느 것이 갈취인지, 어디까지 장난이고 어디부터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실제 학교폭력을 다룬 CNN과의 인터뷰에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은 처음엔 이것이 학교폭력인지 몰랐다는 말을 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도움이 필요하다니 심부름을 했던 선의가 셔틀로 이어질 줄 몰랐다는 것이다. 동의를 얻지 않고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기분 나쁜 장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뭔가 쪼잔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한 채 괴로움은 커지고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면서 피해자는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다. 게다가 가해자들에게 표적이 되는 대부분의 피해 학생들은 친구가 없는 학생인 경우가 많다. 매점에서 뭔가 사달라고 하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것조차 관심으로 받아들이다 괴롭힘 정도가 심해지면 더 큰 상처를 받고 그나마 무리 속에 섞여 지냈던 삶이 무너질까봐 폭력적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학교생활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서지 말 것을 주문받는다. 선생님이 지시하지 않았는데 하는 행동은 제지 받기 일쑤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펜을 고를 때도(볼펜으로 써요? 연필로 써요?) 행동을 허락받아야 한다.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할 경우 괜히 나대는 것이 돼 교사에게 핀잔을 듣거나 학생들에게도 나댄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단 한 번도 학교생활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어떻게 학교폭력에만 적극 나설 수 있겠는가. 일상에서 자신의 인권침해나 타인의 인권침해에 적극 나서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알지 못한다. 학생들이 말하게 하려면 이제 침묵을 요구하는 문화가 아니라 학생들이 나설 수 있도록 질문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 인권을 존중하자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의견을 묻자는 것이다.

“오늘 하루 너는 인간적인 대답을 받았니?” “지금 이 순간 너에게 일어나는 일은 네가 동의한 거니?” “너는 오늘 하루 인간다운 삶을 살았니?”

학생들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며 삶을 순간순간 돌이켜볼 수 있을 때 자신의 행동이 인간다운 행동이었는지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삶의 일부가 될 때 자신이 가진 힘이 자신에겐 즐거움이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괴로움일 수 있다는 것도 깨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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