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1000조원은 모두가 개인의 탓인가. 정부의 책임은 둘째로 하고 기업은 책임이 없는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그랜저’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거실 표정인테리어 ‘자이’와 함께.”

“엄마 우리 집은?”

세 가지 모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광고 카피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이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을 때 고급 승용차인 그랜저를 타고 잘산다고 대답했다는 내용이다. 이 순간 대답을 들은 친구의 표정은 부러움과 씁쓸함이 동시에 보이는 것 같다. 고급 아파트의 넓은 주방과 고급 조리기구를 사용하는 최고 여배우는 자신이 여자인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 순간 자신의 집과 좁은 주방을 보는 주부는 여성이 아니게 된다.

아이가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를 보면서 엄마에게 우리 집에는 왜 얼음 정수기가 없냐고 따져 묻는다. 이 순간에도 엄마는 자신의 집에 대한 초라함을 느끼거나 아이를 기죽어 살게 하는 엄마인 자신의 상황이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빚을 내서라도 소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또 고리 사채를 조장하는 대부업체 광고의 카피는 위로와 친절, 편리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험”은 노후의 걱정거리를 없애기 위해 누구나 가입하고 있으며, 가입하지 않으면 나만 소외될 것 같은 느낌이다. 마트의 진열대엔 기호품인 커피의 광고 전쟁에만 최고의 미인 4명이 동원된다.

소비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차량, 주택, 가전제품은 물론 기호식품과 금융상품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광고의 영향력이 지배하고 있다. 광고에 자주 노출되는 우리들은 실상 진짜 욕구와 욕망을 알아낼 수 없다. 끊임없이 지갑을 열도록 하는 광고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광고의 가장 큰 폐해는 가짜 욕망과 욕구의 창출이다. 필수품의 제조를 넘어서 기호품의 제조도 포화가 돼버려 가짜 욕구와 욕망을 창출하지 않으면 소비와 선택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소비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이 소비구조의 전면에 2011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의 96.7%를 차지하는 30대 재벌이 포진해 있다. 가계부채 1000조원은 대자본과 개인의 합작품이다.

이제 개인들은 개인의 소비 습관을 넘어서서 사회의 소비구조와 환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팔고 싶은 상품에 매겨놓은 가격대로 구매할 것이 아니다. 정말 내게, 가정에 필요한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산의 범위 안에서 순서대로, 곧 내가 정한 가격으로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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