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 공천 안 지킨 정당, 표로 심판해야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반드시 선거를 통해서만 창출돼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선거가 선거답게 기능해야만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선거는 후보자가 정책을 매개로 유권자와 소통하는 기제임과 동시에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우선 정통성(legitimacy) 부여 기능이다. 정통성이란 한마디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의미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후보자는 이런 정당성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인 복종을 도출하고, 안정된 지배를 확립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정통성의 근거를 전통, 카리스마, 합법의 3가지로 유형화했다. 그런데 선거야말로 합법적인 정통성의 근거다.

둘째 사회갈등 해소 기능이다. 어느 사회든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치의 본질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통해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제도권내로 흡수해서 조정하는 것이다.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의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회의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력들이 제도권 밖에서 극한 투쟁을 벌일 경우 사회는 혼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의회에서 여러 세력들이 대화하고 타협하면 갈등을 훨씬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셋째 대표자 선출 기능이다. 대표(representation)란 의원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 주민과 융합되는 관계다. 이런 관계는 의원과 주민 간의 상호 역할 기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대표는 이들 두 그룹이 실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따라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있는 이번 4·11 총선은 이와 같은 선거의 고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선거 결과 자체는 정통성을 부여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선거 과정은 기대 이하다. 표만 된다면 국가이익은 물론이고 원칙과 정체성도 서슴없이 버리고, ‘상대방 헐뜯기’에 혈안이 된 네거티브 운동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거가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 민생과 전혀 무관한 해묵은 색깔 논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에 30% 여성 공천을 약속했고, 민주당은 15%를 의무화했다. 결과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배신의 극치였다. 새누리당은 7%, 민주당은 10%에 불과했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공천 상황을 보면 서울 중구의 나경원, 영등포갑의 전여옥 등 수도권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여성 의원들이 대거 탈락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번 총선은 과거로의 회귀냐, 미래로의 전진이냐의 갈림길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성 공천의 시각에서 보면 새누리당은 과거 회귀보다 더 참담한 퇴보 그 자체였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역경 속에서도 온몸으로 여성운동을 펼쳤던 한명숙 대표가 평소 주장했던 여성의 실질적 정치 대표성 제고를 관철시킬 것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무기력으로 일관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공당의 대표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라는 소박한 요구다. 여야 여성 대표들이 왜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원칙과 소신이라는 가치가 여성 공천 앞에서는 작아지는가? 의지와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천은 끝났지만 응징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금 여성운동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말한 “분노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명언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여성의 대표성 제고를 위한 ‘아름다운 선동’의 불을 지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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