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에서 대부분 탈락…여성 인력풀 갖춰라

이번 4·11 총선에서 가장 대표적인 ‘개혁’ 화두인 ‘지역구 여성공천 할당’. 안타깝지만 19대에선 그 오랜 꿈을 접어야 할 듯싶다. 이번 만큼은 여야 여성 지도부가 자리한 만큼 여성정치 세력화에 청신호가 켜질 줄 알았던 여성계에 각 지도부는 역부족을 토로할 뿐이다.

3월 15일 현재 새누리당 지역구 공천 확정 여성 후보는 12명, 민주통합당은 20명이다. 애초에 지역구 공천 여성할당에 대해 새누리당은 ‘30% 권장’을, 민주통합당은 ‘15% 강제’를 공표했지만 목표치엔 어림도 없는 초라한 결과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당 지도부의 의지 부족, 계파정치 관행, 경선에서의 열세, 인력풀 문제 등 요인은 대략 몇 가지로 정리된다. 문제는 이들 요인이 서로 맞물려 있어 이번 총선을 통해 얻은 교훈을 각 당 지도부가 정책에 반영하지 않으면 다음 20대 총선 역시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뿌리 깊은 앞의 두 가지 요인은 별도로 치더라도 이번 경선에서 나타난 여성 후보들의 분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새누리당의 경우, 4명의 여성 후보가 경선을 치러 모두 탈락했다. 강북을 당협위원장을 지낸 이수희 후보만 제외하고 모두 지역 기반이 약한 후보들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마포에선 당내 활약이 두드러졌던 김유정·김진애 현직 의원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호응을 얻어가는 추세였지만 수년간 지역구를 관리해온 기존 남성 후보들에겐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공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시간적으로 여성 전략공천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일단 공천이 확정된 여성 후보들도 야권연대에 의해 재경선을 치를 경우 탈락 폭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이미 민주통합당에선 경남 진주 을에 공천을 확정지었던 서소연 후보가 야권연대 경선을 통해 탈락했다.

물론 경선이 다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충남 아산에서 김선화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손학규 상임고문의 최측근인 강훈식 전 당대표 정무특보를 이겼고, 강원 원주갑에서 김진희 전 강원도의원이 박우순 국회의원을 꺾었다. 전북 익산을에선 전정희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소장이 4선을 노리던 조배숙 국회의원을 제쳐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경선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더구나 이들 경선 승리 후보들은 상대 후보에 비해 조직이나 당내 기반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였다. 열쇠는 바로 ‘여성 20% 가산점’ 제도였다.

지역구 여성 의무공천을 각 당이 발표했을 때 남성 후보들 사이에선 “후보로 출마하는 여성을 경쟁력을 따지지 않고 다 공천해줘도 그 할당을 못 채울 텐데”란 냉소가 팽배했다. 한 여성 후보가 토로했듯이 이번 경선 결과를 통해 뼈저리게 얻은 교훈이 있다면 “본선 경쟁력을 입증해야만 여성 의무공천이란 적극적 조치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것과, 지금이라도 여성 인력풀에 대한 제고가 없다면 더 이상 여성들이 정치에 비전을 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각 당은 예비 여성 정치인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있지만 그게 얼마나 현실적이냐는 자성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역 기반을 탄탄히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그리고 실전에 임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과연 있느냐라는 질문도 던져본다. 더 이상 여성정치 세력화라는 대의명분만으론 이 장벽을 뚫을 수 없다.

이번 총선이 지역구 여성공천 할당이라는 어려운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이견은 없다. 이제 다음 총선을 향해 어렵게 지역구 공천을 확정지은 여성 후보들은 본선에서 꼭 승리할 책무가 있고, 당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성 인적자원을 지금부터 챙겨야 하는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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