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대담하고 당당하게
최근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 네 편을 소개한다. 모두 사회와 여성상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영화다.
금기시되던 성적 표현도 솔직하게
“섹스 중독이란 남자들이 붙여놓은 굴레지. 그 룰을 깨면 죄악시하게 만들고 말이다.”(영화 ‘S중독자의 고백’ 중에서)
제목처럼 영상도 대사도 도발적이다. 스페인의 떠오르는 여성 감독 크리스티안 몰리나가 선보인 신작 ‘S중독자의 고백’은 성(SEX)에 중독된 여성 발레리(베렌 파브라)의 이야기를 대담하고 솔직하게 그린 작품.
남성과 달리 여성의 육체적 쾌락은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은 성욕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주체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여성의 입으로 노골적인 성 묘사를 하거나, 섹스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아직까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공감하기 힘들다”는 관객도 있었다.
그러나 몸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국내외의 ‘가식걸’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백마 탄 왕자와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강요된 로맨스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전통적인 사회적 성 역할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 관객층이 젊어졌을 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상이 예전처럼 종속적이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면서도 “삶과 괴리되지 않은 보통 여성의 삶이 녹아있는 캐릭터가 아닌 것은 아쉽다”고 전했다.
연약한 희생자에서 유능하고 열정적인 전사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전 세계에서 65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소셜네트워크’(2010)로 유명한 데이비드 핀처가 메가폰을 잡아 영화 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은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그것.
신념 강한 기자 미카엘(대니얼 크레이그)이 40년 전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추리극의 가장 강력한 조언자이자, 영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리스베트 살란다(루니 마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제 ‘The Girl with the Dragon Tatoo’만 봐도 알 수 있듯, 작품은 대니얼 크레이그의 영화가 아니라 리스베트를 연기한 루니 마라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한 난잡한 피어싱과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하얀 눈썹에 용 문신까지. 기괴한 스타일과 함께 매사 거침없고 도도한 살란데르의 태도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우아하거나 관능적인 기존의 영화 속 여배우들과는 사뭇 다르다. 외양뿐 아니라 능력도 범상치 않다. 정부의 보호감시를 받고 있지만 천재적인 해킹 능력으로 연약한 희생자에서 단호한 군인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 마치 비디오 게임의 전사처럼 열정적이고 유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더구나 사랑에도 거침이 없다. 20대 초반의 리스베트는 상대방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 양성애자다. 클럽에서 만난 여성과 원나잇스탠드를 즐기는가 하면, 40대 중년 남성인 블롬크비스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기도 한다.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기존의 영화에서 강한 여성은 대부분 모성을 그 힘과 정당성의 근원으로 해 아쉬웠다”며 “여성이 모성애를 빙자하지 않고도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게 신선해 보인다”고 밝혔다.
주체적으로 꿈을 찾아 도전하는 언니들
배우 엄정화와 황정민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댄싱퀸’(감독 김석훈, 19일 개봉)은 오랜 꿈이었던 가수에 도전하는 평범한 주부의 고군분투기다. 왕년의 끼를 주체하지 못해 공개 오디션 등을 통해 댄스가수에 도전하는 엄정화의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정겹다. 더구나 순박하고 평범한 변호사인 남편이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서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도 신선하다.
사라 제시카 파커의 새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감독 더글러스 맥그라스, 2월 2일 개봉)는 제목 그대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내며 여성 심리를 대변한다. 각본가 엘라인 브로시 매켄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굿모닝 에브리원’을 통해 각각 패션과 방송국 등 선망의 직종을 배경으로 여자들의 커리어와 달콤한 욕망을 흥미롭게 엮은 바 있다. 이번 작품 역시 금융업계 워킹우먼들의 리얼한 일상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그려냈다. 매순간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살벌한 도시에서 자신의 커리어와 연애 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완벽하게 살고 싶은 워킹우먼들의 생활상을 그려냈다.
조흡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영화는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오락이지만 그 재미가 사회적 관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무척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경력단절을 극복하는 주부나 워킹우먼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의 위상이 예전처럼 종속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