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나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고 싶은데.”
“아프리카? 거길 왜 가? 날씨도 덥고, 위험하잖아.”
‘아프리카에 다녀올게’라고 말하면, 대개 이와 같은 2가지 반응이 대답으로 돌아온다.
정말 가고 싶은 곳 혹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 넓은 초원, 순수한 부족들의 땅 혹은 치열한 내전과 지독한 굶주림의 땅. 여행자의 로망 혹은 여행자의 무덤. 환상 혹은 악몽.
환상이든 악몽이든 비현실적인 공간이기는 마찬가지. 아프리카는 어째서 우리들 마음속에서 비현실적인 곳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아프리카를 4번 다녀온 지금도 이 질문이 머리 한편에서 떠나지 않는다.
편견의 색안경을 끼지 않은 채 뜨거운 대륙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아프리카의 현실’을 바라보고 싶었고, 그곳에서 마주칠 마음 편치만은 않은 고민을 함께 떠난 여행자들과 나누고자 했다.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하루 종일 달리고, 텐트 속에서 비를 피하고, 가끔은 말라비틀어진 빵조각을 콜라와 함께 삼키면서 살아있는 아프리카와 그 속의 사람들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다시 한 번 아프리카로 떠났다.
개인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지금껏 해온 대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헤매고 다니는 배낭여행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여행을 기획하고 여행자들을 인솔하며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투어디렉터로서 선택한 아프리카 여행 방식은 ‘트러킹’이다.
트러킹은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여행 방식으로, 트럭을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이다. 트럭이라고는 하지만, 만만치 않은 도로 사정과 장시간의 이동을 고려한 ‘버스의 좌석에 트럭의 엔진’을 가진 교통수단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캠핑’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진행한다는 사실. 약 20명의 여행자들은 직접 설치한 2인용 텐트 속 침낭에서 잠을 청하고, 현지인 스태프를 도와 식사도 함께 준비한다.
트러킹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 스태프들과 함께 전용 차량으로 아프리카를 구석구석 여행할 수 있어서 안전성과 효율성이 보장되고,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환경적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인 캠핑으로 머물며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어서 주목받고 있는 여행 방식이다. 또한 여행지의 자연환경에 따라 사파리, 스노클링, 마을 방문, 번지점프, 전통 낚시 등 다양한 체험 및 어드벤처 활동을 할 수 있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2011년 1월, 20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동아프리카 4개국(케냐-탄자니아-말라위-잠비아)을 3주 동안 유랑한 그 뜨거웠던 겨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찌는 듯한 더위, 광활한 초원, 지천에 뛰노는 야생동물들, 탄탄한 알몸을 드러낸 원시부족, 기관총을 메고 다니는 시민군, 지독한 굶주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니, 가질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대략 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나 해외토픽 뉴스 정도로만 아프리카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전에는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자들이 아프리카 여행의 첫 번째 일정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시작하는 이 여행 루트를 좋아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많은 부분 깨뜨리며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히 작성해야 하는 각종 입국서류와 퉁명스러운 세관공무원,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과 손님들로 북적대는 나이로비 공항에서의 아프리카와의 첫 만남. 여행자들은 낯선 피부색의 사람들에 둘러싸여서가 아니라 예상과 다른 분위기의 아프리카 모습에 잠시 멍해진다. 달랑 배낭 하나밖에 없는 내게 굳이 짐을 들어주겠노라며 다가오는 포터들과 탑승을 강권하는 택시기사들의 유창한 듯하지만 빈틈 많은 영어의 소나기를 지나 공항 문을 나서서 처음 맞닥뜨리는 아프리카는 기대와는 달리 ‘대초원이 아닌 대도시’.
초저녁이라곤 하지만, 볼을 스쳐지나가는 아프리카의 바람이 후텁지근하기보다는 선선하고 조금 쌀쌀하기까지 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팔, 반바지를 입은 현지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겨울 점퍼를 꺼내 입은 사람들도 보인다. 그제야 출발 3일 전쯤 웹서핑을 하다가 ‘나이로비는 해발 1700m에 위치한 고지대 대도시’라는 것을 읽었단 사실이 떠오른다. 눈은 아프리카의 정보를 읽었으나 머릿속의 아프리카는 여전히 선입견에서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도착 시간이 운 좋게(?) 맞아떨어진다면 나이로비의 명물인 교통체증도 체험할 수 있다. 러시아워의 강변북로와 비교해도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굳이 칭한 것은 ‘지금 아프리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대한 판타지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도 즐거운 여행이겠지만, 오늘의 그 여행지의 모습을 보고 오는 것이 진짜 여행이 아닐까?
우리가 알고 있었고, 기대하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모습이 실은 이 뜨거운 대륙이 가진 수많은 얼굴 중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3주간의 시간을 통해 여행자들과 함께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여행 기획자이기에, 번잡하고 매연으로 가득 찬 나이로비가 답답하고 시간 아까운 곳이라기보다는 여행의 좋은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장시간의 비행 이동과 대도시에서의 치안 문제를 고려해 첫날 밤 숙소는 캠핑이 아닌 현지인이 운영하는 비교적 고급 호텔로 정했다. 피로와 허기를 해결한 아프리카에서의 첫날 밤, 여행자들과 나는 기대와 걱정이 섞인 눈빛을 주고받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도 그날 우리가 본격적인 여행 일정을 앞두고 밤잠을 설친 것은 시차 때문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낯선 공기가 주는 설렘 때문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