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15만원 받고 주당 50시간 일하며 보모 취급까지 받아
평가인증 통과 위해 써내야 하는 서류만 10개 이상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여성신문DB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여성신문DB
최근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 폭행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교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육교사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어린이집 간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인증제의 허점, 이로 인한 보육교사의 과다한 업무량과 정신적 압박 그리고 형편없는 처우가 일련의 폭행사건을 야기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서울 송파구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 10년차 황모(35)씨의 하루는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근은 대략 오전 8시. 한 달에 일주일은 당직을 맡아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 하지만 황씨의 퇴근 시간은 항상 둘쭉날쭉이다. 사전 연락 없이 아이를 제 시간에 데리러 오지 않는 부모들이 있어서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도 연장수당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황씨는 “한번은 원장선생님께 수당을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수당을 주는 원은 한 곳도 없고, 만약 우리만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원장들 사이에서 왕따가 된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오전 간식 시간부터 실내 놀이, 점심, 화장실 지도, 투약, 특별활동, 낮잠 시간, 오후 간식 챙기기까지 그의 하루 일정도 빠듯하지만 아이들이 돌아가면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 청소, 빨래, 장난감 소독, 각종 서류 작성과 사진 촬영까지 모두 황씨의 몫이기 때문. 그가 매일 작성해야 할 서류만도 하루일과 일지, 일과운영 일지, 영유아 관찰일지 등 3개에 행사, 안전교육, 다문화교육, 소방교육, 부모참여교육, 부모상담, 신입적응프로그램, 신체계측, 발달체크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류화해야 하고 매일 급·간식과 아이들 활동 모습을 사진에 담아 홈페이지에 올려야 한다. 그는 “보육교사들은 아이들한테 눈을 떼면 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화장실 갈 틈이 없어 방광염을 달고 산다”며 “게다가 교구와 교재 준비 시간도 빠듯한데 기록해야 할 서류는 산더미라 몸도 마음도 힘에 부친다”고 토로했다. 그가 하루 평균 10시간씩 아이들을 돌보며 받는 임금은 기본급 98만원에 처우개선비 25만원. 이마저도 세금을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115만원이 전부다. 황씨는 “임금과 처우는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며 “연가·휴가는 고사하고 아이가 아파도 대체교사를 내가 직접 구해놓아야 휴가를 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보육교사의 월급 수준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박상은 한나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육교사 월평균 급여는 126만원이었다. 그나마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의 월평균 급여가 167만원. 하지만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의 5.3%에 불과하다. 전체의 51.8%를 차지하는 정원 20명 이하의 가정보육시설 교사의 월급은 114만원에 불과하다. 초임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약 90만원의 기본급만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황씨는 열악한 근무조건도 문제지만 보육교사에 대한 인식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번은 아이들끼리 싸우다가 한 아이가 얼굴을 물려 아이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지만 돌아오는 말은 ‘애를 잘 봐야지 뭐했어요? 욕 나오려고 하네’였다”며 “보육교사를 선생님이 아닌 보모로 취급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태도에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보육교사 6년차인 이모(34)씨는 정부 당국의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 감독이 부실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늘린다고 하는데 평가인증을 한다고 해도 어린이집에서 서류나 사진을 조작할 수 있고, 당국에서 모니터링을 나와도 어린이집 원장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 제대로 감시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평가인증 필요 서류들을 줄이거나 서류작업을 따로 맡는 직원을 배치하고, 원마다 타임체킹 기기를 배치해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육의 질적 성장을 위해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은 중요한 선결 과제다.

배창경 한국보육교사연합회 공동대표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어린이집 폭행 문제는 일부 교사들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보육교사들이 겪는 과다한 업무량과 열악한 처우 등의 구조적인 문제도 크다”며 “보육교사들이 보육업무 외에도 시청과 구청 등으로부터 운영 실태를 점검 받느라 초과 근무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그에 맞는 임금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실히 요구된다”며 “학부모들이 보육교사를 교사로 인정해주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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