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는 남자가 정치해야”
“설거지하는 남자가 정치해야”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1.11.11 12:07
  • 수정 2011-11-11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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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할 바뀌더니 잔소리하는 ‘남편’ 된 아내
아이에게 ‘여백의 교육’… 자기성찰 계기 됐다”

가사와 육아를 도맡는 전업주부 남편이 크게 늘고 있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된 성역할이 깨진다는 점에서 분명한 사회적 변화다. ‘국내 남자 가정주부 1호’ 차영회(52), ‘평등부부상’ ‘성평등 디딤돌상’을 받은 ‘밥상맨’ 오성근(46), 여성가족부 포털사이트 위민넷에 ‘또바기 일기’를 연재 중인 김국남(42), 호림박물관 큐레이터직을 그만두고 전업주부 2년차가 된 박찬희(42)씨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 여성신문사 편집국에 모여 전업주부 남편들의 애환과 보람을 들려줬다. 

<편집자주>

 

김국남, 차영회, 박찬희, 오성근씨(왼쪽부터)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길을 함께 걸으며 전업주부 남편들의 ‘즐거운 외조’를 들려줬다. 이들은 “군대보다 힘든 육아”라면서도 “육아를 해야 진짜 남자”라고 입을 모았다. ⓒ김수진 기자
김국남, 차영회, 박찬희, 오성근씨(왼쪽부터)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길을 함께 걸으며 전업주부 남편들의 ‘즐거운 외조’를 들려줬다. 이들은 “군대보다 힘든 육아”라면서도 “육아를 해야 진짜 남자”라고 입을 모았다. ⓒ김수진 기자
엄마와 아내를 여자로 보게 돼

차영회(이하 차)=직장생활 할 때 출판사에 여자가 많았는데 같은 인간으로 보진 않았어요. 나서대는 여성이 좋은 기획안을 내면 일부러 며칠 썩혀 꼬투리 잡고…. 어릴 때 제천 시골에서 컸는데 여자아이들을 못살게 굴었죠. 초등학교 동창들이 그래요. “(마초인) 네가 그렇게 변한 데 배신감을 느낀다. 동창회 나오지 말라”고.(웃음)

전업주부로 5년쯤 지나니까 시각이 교정됐어요. 여자도 남자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됐죠. 엄마도 여자, 집사람도 여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회가 남성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대부분의 남자는 엄마를 여자가 아닌 엄마로 봅니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면서 여자로 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죠.

오성근(이하 오)=살림하면서 느낀 것은 딱 하나예요. 남녀가 다르지 않다는 거죠. 외동딸인 다향이가 아기 때 자다 아프면 울잖아요. 아내는 밤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제가 딸애를 업어주다 허리 아프면 안아주다 밤샌 날이 많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신경과 정성이 애한테 가니까 아내가 딸을 질투하더군요. 

김국남(이하 김)=막내아들이라 어머니와 주로 지냈어요. 살림을 잘하는 편이라 전업주부 생활도 거부감 없이 하고 있어요. 변화가 가장 확실한 것은 육아예요. 아들이 10살쯤 되니까 보이더라고요. 부부 모두 열심히 일하고, 아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라서 셋이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아들은 아빠의 육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여백의 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봐요. 아이의 지덕체가 골고루 발달되지요.

박찬희(이하 박)=아이 키우면 문제가 팍팍 터져요.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나를 키우는 것이죠. 자기성찰과 자기치유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남자들이 힘의 논리상 가사노동을 여자일로 떠넘겼다는 느낌이 들어요. 남자들 편하라고 만든 시스템이죠. 행복한 삶의 가치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차=예전에는 다들 사회생활을 독립투사처럼 했지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엔 술집에서 “니네가 정치를 알아” 소리치면서 술에 취해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했죠(웃음). 요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강권해요. “육아휴직은 평생 한 번이다, 갓난아기 기저귀 채워주는 경험은 인생에서 다시 안 온다.” 육아휴직을 쓴 후배들은 고맙다고 해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거죠. 육아휴직을 쓴 남자들은 정말 달라져요.

“집에서 뭐 했냐”는 아내 잔소리

김=개인적인 성향은 남성적이에요. 별명이 ‘불광동의 안정환’이에요. 축구를 아주 잘해요. 남자들과 잘 노는 스타일인데 “오늘 공 차러 나와라”고 할 때 못하니까 힘들었어요. 저와 같이 직장 다닌 친구들은 계속 진급하고 사회에서 뭔가 한 자리씩 하고 있는 거예요. 난 매일 기저귀 갈고 있는데 옆에선 승승장구하고…. 만화 창작을 해야 되는데 “빨래 걷었나, 오늘 저녁 뭐 해먹지….” 끊임없이 생각하니까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에게 집중하자”고 다짐하곤 3년가량 완전한 전업주부이자 육아 담당자로 지냈어요. 한참 지나 아이 업고 설거지하면서 “아, 내가 주부우울증에 걸렸구나” 그런 느낌이 왔어요. 오죽하면 아내가 주말마다 운동해라, 스트레스 풀라면서 바깥에 내보내줬다니까요(웃음).

오=부부 간에도 경제적 주권이 꼭 있어야 하거든요. 그걸 놔버리니까 언제부턴가 내가 쓸 걸 쓰는데도 눈치를 보는 거예요. 한번은 부부싸움 후 화가 나서 맥주 먹으러 가다가 발걸음에 힘이 빠지고 속도가 느려지면서 “내가 지금 술집 가서 맥주 네 잔을 먹고 안주로 골뱅이 시키면 가격이 얼마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다들 웃음). 그러면서 동네 구멍가게에서 맥주와 번데기 한 통 사다가 혼자 먹고…. 그럴 때가 참 치사한 것 같아요(웃음).

박=제가 다닌 직장은 오후 6시면 ‘칼퇴’를 했어요. 아내가 야근하는 날엔 막 성질이 나는 거예요. “야, 거기는 왜 계획성 없이 일이 그렇게 생기냐!” 하루는 아내가 퇴근해 집에 들어와선 아이 옷이 위아래 한벌로 안 맞는다고 지적하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입혔는데….” 아내의 말이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김=어느 순간 성역할이 바뀌더니 아내가 남자가 됐어요. 집에 들어오면 “밥 줘” 하고, 그냥 피곤하다고 자고, 아침에 일찍 나가요. 전 본능적으로 육아를 하는 엄마가 된 거죠. 아이가 “아빠” 하고 먼저 말했어요. 10년 동안 제 옆에서 잠을 잤어요(웃음). 

아내 성격이 남성적인 편인데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 하듯 “집에서 뭐했는데 청소도 안 해놓느냐”고 해요. 전 대놓고 짜증내면서 주부 입장에서 “애가 오늘 이러저러해서 청소할 시간이 없었어”라고 했지요. 주변 사람들도 “뭐가 덜떨어져서 주부를 하냐”, 동창회에 나가면 “오늘 저녁 내가 산다. 주부가 뭐 돈이 있냐”고 하고….

박=“아, 오늘 저녁은 또 이거야? 찌개 다른 것 좀 끓이지.” 시간 지나니까 아내가 그렇게 바뀌더라고요. 세상일 돌아가는 것보다 집안일이 더 중요해지니까 소외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요.

아이는 왜 엄마만 키워야 해?

박=퇴직하고 애 키운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장모님은 그렇게 결정하고 판단했으면 존중한다면서 좋아하셨지요.

김=처가에선 다들 좋아하시더군요(웃음). 살림과 육아는 배울 게 대단히 많아요. 육아휴직자는 국가가 전업주부 수업을 시켜줬으면 해요. 

오=딸애가 한 살 때 과천환경연합회가 ‘쓰레기 반으로 줄이기’ 공모를 했어요. 제가 일등을 했어요. 지역신문에 보도된 후 한 아주머니로부터 육아모임에 오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실은 그때까지도 주부라는 계급성을 인지하지 못했어요. 고민하다 육아모임에 참여했어요. 당시만 해도 전 특이한 사람이었죠. 아이랑 같이 놀이터 가면 조용해지고 엄마들은 뒤로 빠지고, 기저귀 가방 들고 아이랑 마트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피했거든요(웃음).

영유아 수영반이 있었는데 ‘엄마랑 아가랑 방’인 거예요. “애를 엄마만 키우라는 법이 어디 있어?” 젊은 엄마들이 요만한 욕조에 수영복 입고 아기 안고 들어가 있더군요. 이를 악 물고 들어갔죠. 내가 안 들어가면 다향이는 수영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왔어요. “혹시 나 때문인가?” 나중에야 생리 때문인 걸 알았죠. 소수자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더라고요.

차=제가 종갓집 장손이에요. 아빠가 전업주부가 된다는 것은 가족 전체의 문제가 돼요. 아이들도 잠깐 갈등을 겪었어요.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회사 가서 돈 벌고 엄마가 집에 있으면 안 돼? 우리 평범하게 살면 안 돼?” 하고 조르는 거예요. 사람살이가 다양하다는 걸 이야기해줬지요.

김=장을 보러 갈 때 단골이 있어요. 재래시장 중에서 달걀은 어디서 사고, 고기는 어디서 사고. 주부가 된 후 국을 끓이는 노하우도 생겼어요. 원래 저는 일주일을 똑같이 먹어도 되는데 아내와 아들은 달라요. 된장국을 끓였으면 다음날엔 살짝 김치를 넣고, 또 다음날엔 고기 넣어 끓이면 좋아하고. 살림이 매일 반복되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기간이거든요. 매일 밥 차리고 먹는다는 행위에 노하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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