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영화로 먹고살기
최고은 작가 사건을 겪으며 촉발된 영화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논의는 이번 포럼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패널들은 하나같이 “최고은 작가의 일로 너무나 큰 심적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면서, 만성적인 고용불안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평균 연령이 타 분야에 비해 매우 낮고(29.18세, 2006년 통계), 평균 종사 기간이 5년 남짓으로 여성 영화인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도 많았다.
권은선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충무로의 나쁜 관행’들을 지적했다. 노사계약이 프로젝트 단위로 행해지고, 계약이 팀별로 이뤄지는 등 고용형태의 문제가 그것이다. 권 교수는 “시나리오 작가를 예로 들면 시나리오 한 편에 평균 2000만원 정도를 받는데 보통 세 번(계약금, 중고, 완고)에 나눠 지급한다. 2~3년에 걸쳐 원고를 수정하거나, 중간에 영화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 200만원대로 떨어지는 경우도 나온다”고 설명하며 “영화산업이 유난히 리스크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위험부담은 함께 나누고 이익은 일부가 독식하는 지금의 관행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여온 사포 감독도 “영화계에 몸담은 지 7년, 그간의 생활은 ‘버티고 버티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며 “예술에 대한 꿈으로 버텨오기는 했지만, 가끔은 젊은 예술가의 꿈을 저당 잡아 노동착취 구조를 정당화하는 현실이 힘겹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각종 비정규직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영화감독의 꿈을 향해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줘 참석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린’ 여성 감독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영화계의 현실이다. 박지영 여성영화인모임 사무차장은 “여성 영화인에게 일·가정 양립과 상업영화에의 도전은 꿈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임순례·이정향 등 장편영화를 선보일 수 있는 여성 감독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라고 전했다.
미술계- “삶 속의 예술”
미술교육 현장에서 여성의 비율은 90%에 육박한다. ‘여초현상’이라 설명되기도 하지만 실상 생산의 영역이나 고위직에는 갈수록 여성 비율이 적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포럼에 참여한 미술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사회 안의 소수자나 다르게 보기 방식과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비평가가 이야기하고 제도가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여성의 해방은 여성만의 해방이 아니라 모든 소수자 그리고 남성의 해방이기도 하다”며 “모순의 극복을 위한 사회적 운동과 더불어 모순을 낳는 기본적인 이분법의 극복을 위한 대안의 예술언어를 찾아내는 데 몰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혜주 전시기획자는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을 공개했다. 그는 여성의 관점으로 공공성의 성격을 띠는 미술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오 기획자는 “사실 여성은 사회의 절반을 구성하는 존재이므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술은 절대 비주류라 할 수 없다”며 “여성 특유의 약자로서의 감수성은 나머지 소수자와의 공감과 연대를 가능하게 해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관행을 낙후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다중의 삶 속에서의 예술활동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성매매 여성, 성소수자 등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드는 미술활동에 대한 기획을 해온 김주혜(수수)씨는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몸 자체가 첨예한 지적 생산물이기에 이를 걸러내 특정한 형식적 숙련으로 담으면 예술이 될 수 있다”며 “모두가 삶의 영역에서 숨 쉬듯 예술을 하고 예술가가 되는 일은 독점적·상업적 주류에 대한 공격적 활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극계- 연극열정, 여성열전!
공연문화계 직종에서도 여성이 꾸준히 활동하고 일정 지위 이상으로 승진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예술 인력에 관한 통계자료를 발표하면서 “남녀차별적 관행은 연극분야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남녀 간 소득과 근로자 연령의 격차가 가장 높은 분야가 연극이라는 것.
특히 결혼과 육아의 문제는 여성 연극인들의 경력단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백순원 극단 시공 대표는 “7회를 맞이한 여성연출가전에 참여한 22명의 연출가 중 대부분은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30대 후반이지만, 결혼을 ‘지금의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더라”며 “이들은 예술활동과 가정생활 유지에 대한, 그리고 육아를 위해 쉬는 동안 오는 공백기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여성 예술인들의 예술적 성취와 육아를 동시에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해법은 “공연장 밀집 지역인 대학로에 영유아 탁아소 및 방과 후 학습·놀이 공간의 확충”이다. 최영주 연극평론가는 이밖에도 “여성 출산 지원의 법제화가 시급하다”며 “구체적으로 휴직과 복직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이를 취업 당시 계약서에 명시하고 사후 감시와 점검 시행 및 복직 후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