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었다

성옥은 비어 있는 두 개의 좌석 안쪽으로 들어갔다. 배낭을 벗어 바닥에 뉘었다. 벨트를 매고 허리에 맞게 조였다. 무엇이건 딱 맞게 조이면 한결 마음이 놓였다. 두 개의 복도엔 자기 자리를 확인하며 들어서는 탑승객들로 분주했다. 누군가 선반으로 팔을 뻗으면 금방 통로가 막혔다. 성옥은 그 줄 위로 피어오르는 짜증과 조바심이 느껴져 심호흡을 했다. 편안하지 않은 감정들이 뭉치면 무서운 기운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었다.

머지않아 성옥은 앞자리 등받이 위로 솟구친 남자의 머리를 보았다. 한 쪽은 머리가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한 서울말이 들렸다. 성옥은 아직 비어 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보았다. 누가 앉을까. 좋은 사람이었으면. 성옥은 모르는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 그가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성옥이 압록강을 건넌 이후에 생긴 것일지 몰랐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성옥의 자리에 서서 손에 든 티켓을 들여다보았다. 이분은 교수일지 몰라. 성옥은 순식간에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누구라도 웃는 얼굴이 좋았다. 화사한 얼굴 화장, 크림색의 초가을 코트. 성옥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에게서 미소를 거두지 않고 바라보았다. 

“자리 맞게 앉았어요?”

그 여자가 물었다. 얼굴선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모가 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성옥은 귀가 긁히는 아릿한 느낌에 그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표정은 서둘러 어두워졌다. 

“네? 뭡니까?”

성옥이 물었다. 난 당신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난 좋은 사람입니다, 거의 이런 선언으로 반죽된 말투였다. 얼굴엔 벌써 붉은 기운이 비쳤다. 이러면 안 됐다. 얼굴이 붉어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한국에 온 후 하루를 반성할 때마다 맘에 걸렸었다.

곧 줄이 늘어지고 승무원이 이쪽을 향해 무어라고 말하는 게 보였다. 성옥은 무턱대고 일어나서 복도 쪽으로 나와 여자에게 길을 틔워주었다.  

“제가 잘못 앉았습니까?"

성옥은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지고 어깨에 멘 작은 가방의 지퍼도 열며 물었다. 여자가 힐금 돌아보고, 성옥에겐 비웃음이 감지되었다. 온몸이 졸아붙는 느낌이었다. 

“확인하고 싶어요?”

여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당황한 성옥에게 티켓을 내밀어 보였다. 또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시력을 가진 성옥의 눈에 좌석 번호가 손톱만큼이나 확대돼 보였다. 18A. 창 쪽 좌석이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성옥이 말했다. 부인은 들고 온 신문을 펴려다가 문득, 성옥을 쳐다보았다. 

“고향이 어디예요?”

여자가 물었다. 당신 한국 사람 맞아요? 성옥에겐 이런 말로 들렸다. 

“….”

성옥은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숙였다. 곧 신문의 갈피를 뒤지는 소리가 나고 신문의 냄새도 퍼졌다. 성옥은 좌석 주머니에 든 잡지 하나를 아무렇게나 꺼냈다. 갈피를 넘겼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에 들어와도 의미는 없었다. 어수선하던 기내는 한결 안정됐고 승무원은 복도로 다니면서 벨트를 매었는지 살피고 있었다. 

‘제 고향은 함경돕니다.’

‘저는 북한 사람입니다.’

‘북한에서 왔습니다.’

이 중 어떤 말이라도 했어야 했다고 성옥은 생각했다. 벌써 몇 번짼지 셀 수도 없는 후회였다.

다음엔 꼭 북한 사람입니다, 자신 있게 말할 거라고, 그래야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결심했는데… 그러나 이런 모멸감과 책망과 수치심 사이에 시달리는 동안 비행기는 이륙을 준비하고 활주로를 달렸다.

아니다, 북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주민등록을 받았고 여권도 있으며 남한 사람처럼 돈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성옥은 빠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했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은 자주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 몸이 굳었다. 언제나 대답하지 못했다. 뉴스를 보며 아나운서의 말투를 따라하고 연속극을 보면서 표현을 익히는 건 생존투쟁이었다. 처지가 같은 사람들은 성옥의 말투가 서울 사람 같다고 칭찬했다. Y도 말투만으로는 성옥이 북한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습관은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 바뀌거나 변하는 것이고, 그럴 시간이 필요했다.       

성옥은 좌석 표를 여권 덮개의 갈피에 넣어둔 것을 기억했다. 여행사 직원이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며 창가 쪽도 가능하다고 했었다. 아니요, 복도 쪽이 좋습니다. 성옥은 밖을 내다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때 종업원이 성옥을 쳐다보았다. 복도 쪽은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데, 중얼거리던 말소리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성옥은 눈을 감았다. 복도 건너편 쪽에서 단체로 여행을 가는 듯한 사람들의, 고추장을 가져왔다, 김을 가져왔다, 깻잎장아찌가 그만이다 등의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떠 난 다. 성옥은 들뜬 여행자들의 말소리에 묻히며 상상했다.

그랬다.

어젯밤, 성옥은 다른 날처럼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왔다. 알바를 끝내면 언제나 그맘때였다. 하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피로는 몰리는데 정신은 말똥거렸다. 짧은 일정의 여행 준비는 간단해서 아침에 해뒀었다.

성옥이 잠든 건 아마 새벽 3시나 되었을 것이었다. 핸드폰으로 입력해 둔 모닝콜은 5시 30분이었다.

그곳, K시. 기차역이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철로는 반짝거렸지만 군데군데 녹이 슬어 보였다. 기차역의 승강장은 텅텅 비었고 밝은 옷차림의 아빠와 엄마는 건강한 얼굴이었다.

“어디 가든 잘 살라.”

아빠였다.

분명히 아빠가 말했는데 말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성옥은 말소리를 따라 먼 데로 시선을 던졌다. 푸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빼곡한 산이 휙, 하고 가깝게 다가왔다. 소나무마다 솔방울이 다닥다닥 붙었고 주렁주렁 달린 도토리의 무게로 참나무 가지는 휘어 보였다. 산에 풍년이 들면 땅은 흉년이 든다고 했던가, 바다가 흉년이라고 했던가, 성옥은 꿈속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직 기차는 오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조바심으로 몸이 다 마른 뒤에야 기차가 왔다. 기차에 서둘러 올라탔는데 그 잠깐 사이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승강장은 텅 비었고 아빠와 엄마는 거짓말처럼 모습이 사라졌다. 열매를 매단 나무로 빼곡하던 산은 민둥산이고 더군다나 기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성옥은 무섭고 두렵고 겁이 났다.

성옥을 깨운 건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보았다. 5시 25분. 모닝콜을 5분 앞둔 시간이었다.

아빠!

성옥은 속으로 말했다. 아빠가 이렇게 자신을 깨웠다고, 생각하자마자 울컥 목이 메었다. 목이 메기도 전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바보. 단단해져야지. 성옥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잡아 이악스레 비틀었다.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눈물이 멎지는 않았다. 슬픔도 목숨이 있어서 제 숨을 스스로 거둘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고 옷을 입는 동안이라도 주어야 슬픔이 수그러들었다. 언제나 그랬다.      

기내엔 긴장감이 팽팽했다.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땅을 박찼다. 이륙이었다. 성옥은 휴우, 숨을 내쉬었다.

성옥은 이륙의 순간에 온몸이 깃털처럼 흩어지는 걸 느꼈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느낌. 성옥은 오래도록 이 느낌을 움켜잡은 채 놓지 않았다. 

기장은 안전벨트 사인이 꺼졌어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 하라고 안내 방송을 했고 앞치마를 두른 승무원들은 복도를 분주하게 걸어 다녔다. 모니터엔 비행 중인 지도가 보였다.

땅은 바다에 있었다. 바다는 모든 땅을 연결했다.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의 항로는 동해를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해의 굽이를 돌면 동해였고 동해를 따라 죽 올라가면 K시가 있었다. 성옥은 동해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라고, 창가를 선택하지 않은 자신의 맘 그리고 무심결에 창가에 앉은 자신의 갈망을 이해하며 깜짝 놀랐다. 

괜찮아, 성옥! 이제 시작했으니까.

성옥은 자신에게 말해줬다.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있다고, 어디 가든 잘 살고 있다고 마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성옥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눈물에 잠겨 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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