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필수에 양성평등 과목 개설해야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명문 사학 의대생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의료인의 윤리의식에 대한 경각심과 성범죄 의사에 대한 처벌 수위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징계 심의가 길어지고 진행 상황이 비공개에 부쳐지면서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가해자 징계 절차를 진행한 대학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학생상벌위원장을 맡은 고려대 의대 엄창섭 교수는 “징계가 최종 확정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난 것 같았다. 규정상 징벌 내용은 비공개인데 온갖 억측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심지어 학교가 압력을 넣어 사건을 조작한다는 오해가 생길까봐 피해자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피해자 책임론’도 불거졌다. 범행 사실을 뒤늦게 부인한 배모씨가 6월 초 같은 과 동기들을 대상으로 ‘피해자는 평소 이기적이다, 아니다’ ‘피해자는 평소 사생활이 문란했다, 아니다’ ‘피해자는 사이코패스다, 아니다’라는 문항이 기재된 설문조사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여학생이 ‘2차 피해’를 입도록 방치한 학교 측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 거세졌다. 급기야 피해 여학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애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남들이 이럴까’ 생각했는데 설문지가 원인이었다”며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 받고 매일 수면제와 약을 복용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우리 가족은 지금 마음이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출교 처분 이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고려대가 재발 방지를 위해 후속 조치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학교가 결정을 미루는 사이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걸 보면서, 민족 고대의 실체가 범죄를 비호하는 것이었나 하는 의심을 키웠다. 고대의 교내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도록 단호한 의지를 밝히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Im****’라는 트위터리안은 “가해자 옹호는 성폭력 불감증뿐 아니라 고대에 뿌리박힌 반인권적 마초문화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사실 학내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면 이상한 ‘꼴페미’ 취급받는 건 어딜가나 마찬가지”라며 “출교가 종결이 아니라 성폭력 재발 방지에 대한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고 적었다.
앞으로 피해 여학생을 보호할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교양필수에 양성평등 과목을 반드시 개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고려대 조용성 대외협력처장은 “성희롱 예방을 위해 계속 후속조치를 논의 중”이라며 “학내 여론을 수렴해 양성평등센터에서 실질적인 성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