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대병원에 빈소 마련…애도 물결 잇따라

노동운동가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노동자들의 대모’로 불려온 이소선(사진) 여사가 3일 오전 11시45분 서울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 7월 18일 자택에서 심장 이상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고, 이후 한일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지속하다가 끝내 영면했다. 병원 관계자는 “이날 오전 8시께 혈압이 갑자기 사라지고 장기 활동이 멈췄으나 많은 분들이 마지막 모습을 뵙고 싶어해 호흡만 유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는 이날 오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10여명이 모여 임종 순간을 지켜봤다. 전태일재단 측은 4일 오후 양대 노총이 포함된 장례위원회를 꾸려 장례 기간을 결정할 계획이다. 박계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5일장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장례위에서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며 “시민사회장이 될지 가족장이 될지 아직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1929년 대구시 달성군(당시 경북 소재)에서 태어난 이씨는 지난 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열사가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숨진 후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내가 못 다한 일, 어머니가 꼭 이뤄주소. 내가 죽고 없으면 엄마가 댕기면서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 주소.” 당시 화상으로 온몸에 붕대를 감은채 이같이 말한 아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전 열사가 숨진 후 이씨는 아들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라며 장례식 치르기를 거부해 노동청장으로부터 노조 허가 약속을 받았다. 이후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고 고문에 추대됐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경찰과 정보기관에 쫓기는 수배자들을 숨겨 주는 등 재야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구속돼 옥살이를 하거나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지난 86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98년에는 의문사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 농성을 벌였다. 이같은 공로로 4월 혁명상과 만해대상 실천 부문상 등을 받았다. 지난 90년 이씨가 낸 회상기의 제목은 ‘어머니의 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아들의 뒤를 따라 진정한 어머니의 길을 걷던 그는 이제 영원히 아들의 품에 안기게 됐다. 이씨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후 조문 행렬이 잇따르는 가운데 SNS에 추모의 글들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이소선 어머님께서 전태일 열사 40주기에 남기신 말씀, ‘노동자는 하나다’. 땀흘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진리, 잊지 않겠습니다. 고우신 어머님, 고마운 어머님, 이제는 편히 쉬소서”라고 애도했다. med***라는 트위터리안은 “노동자의 어머님이자 사람의 어머님이셨던 이소선 여사님. 남기고 가신 숙제 저희에게 맡기시고, 이별 없는 그곳에서 아들과 행복하시기를”라고 적었고, iro**라는 트위터리안은 “전태일 열사는 어머님 품에서, 이소선 여사는 가슴에 묻었던 아드님과 함께 편히 쉬소서”라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전태삼씨와 딸 순옥ㆍ순덕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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