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주어도 될 장난감을 망설였던 이유는 어쩌면 가격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감일 뿐인데도 비싼 것은 20만원이 훌쩍 넘는 것도 있어서 가격을 알아보기도 솔직히 겁이 났다. 그런데 구입하려고 알아보니 20만원이 넘는 것들은 실제 주방가구의 미니어처처럼 아이들의 선 키에 맞춘 정말 거대한 물건이었고, 마침 주언이의 눈높이에 맞는 것이 있어 딱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방놀이세트가 놀이방에 자리한 그날부터 주언이와 선유의 놀이는 오로지 소꿉놀이다. ‘엄마아빠 놀이’는 물론, 둘이 같이 다니는 ‘어린이집 놀이’나 ‘문화센터 놀이’가 아이들의 주된 역할놀이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주방놀이세트 이후에는 무엇을 하더라도 주방을 활용할 수 있는 역할이 등장한다는 것. 가령 어린이집 놀이를 해도 담임선생님이나 차량선생님 외에 주방선생님이 등장하곤 한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이들이 저렇게 잘 갖고 노는데 오히려 좀 더 일찍 사줄걸, 너무 늦게 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쩌면, 의식적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에서는 ‘남자아이 둘 키우는데 무슨 주방놀이세트가 필요할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뒤늦게 내린 결론은, 책을 통해 배운 그대로, 저만한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성 역할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역할놀이 속에서 엄마도 되고, 여자인 어린이집 선생님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인형을 아기인 양 포대기로 업어주기도 하고, 그들만의 주방에서 얼마든지 요리도 할 수 있다. 아빠가 저희를 보살피는 시간이 많기 때문인지 일반적으로 구분되는 엄마아빠의 역할조차도 특별히 관찰되지 않는 편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접하게 되는 사회 속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아이들은 거대한 고정관념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고정관념 속에서 아이들은 성 역할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즐거운 역할놀이에 심취해 있는 이 순간만큼은 저 아이들이 남자아이라는 생각 없이 편하게 바라보고 싶다. 아니, 이대로 자라서 아예 아들만 둘 있는 우리 집에 엄마의 집안일을 꾸준히 도와줄 수 있는 딸 같은 아들이 돼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욕심껏 가져본다.
주방놀이 덕분에 숱한 날 동안 사랑받던 자동차들이 모두 구석에 처박혀 있다. 또 어떤 장난감에 자리를 내어주고 주방놀이세트가 그런 처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주방놀이는 한동안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