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여성, 김진숙
타이밍을 삼키며 미싱을 밟기도 했고, 화진여객 버스 안내양으로 배차주임과 기사들에게 삥땅을 빌미로 한 알몸 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하나 있는 남동생은 노숙인이 되어 쪽방에서 소주병을 쌓아놓고 죽어갔고, 그 장례식장에서 1년 365일 가게 문을 닫아본 적 없는 언니는 통곡을 하다 말고 ‘와사비’ 가격을 물어보는 조카에게 ‘큰 거, 작은 거’ ‘작은 것은 820원’이라고 말하고 나서 다시 운다. 그게 그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길이다.
그는 그 길에서 만나왔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무슨 타고난 투사여서가 아니고, 그가 무슨 단단한 이념으로 무장되어서가 아니다. 무슨 철의 조직이 뒷받침되어서가 아니다. 그는 그런 아픔과 눈물들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집에 편지를 쓴다고 화창한 일요일 기숙사 창문 아래 배를 깔고 엎드려 “어머니 아버지 보세요” 한 줄만 써놓고는 편지지에 눈물 콧물 칠갑을 하면서 보내던 자신과 그렇게 비슷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겨울에도 연탄불을 못 피운 방에서, 이불 하나로 한 자락은 깔고 한 자락은 덮어가면서 살던 시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딸년이 빨갱이가 되어 있다”는 기관원들의 엄포에 열 시간 넘게 아픈 다리를 끌고 부산을 찾아와 부산역 대합실에서 “다친 데는 없냐” “밥 굶지 마라” 딱 두 마디밖에 못하고 갔다가 얼마 뒤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만원이 생기면 짝짝이 신발을 신고 다니던 동지의 운동화를 먼저 사고, 천원이 남으면 순대 한 봉지에 젓가락 여덟 개가 꽂히던 서러운 해고 노동자 시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새벽 출근 투쟁을 나가다 너무나 배가 고파 어느 집 대문간에 내놓은 제삿밥을 몰래 주워 먹던 시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와야 했던 우리 시대의 가족들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세월을 거치고도 눈물바람뿐인 이 땅의 정리해고자들과 900만 비정규직들의 삶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니다. 회사는 오히려 수십 년 이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한국 재계 순위 9위가 되어 있는 대재벌이다. 공짜 밥 달라는 소리도 아니고, 열심히 일할 테니 자르지만 말아달라는 싸움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될 거라는 체념이 아니라, 이 정도는 우리 모두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그가 지금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간 지 190일을 넘기고 있다. 그를 구해야 한다. 그는 우리 시대 여성들의 수난사의 상징이다. 이 땅의 여성들이 그를 구해주면 좋겠다. 7월 30일 3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으로 간다. 우리 시대 가장 아름다운 휴가를 꿈꾼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