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클래식 한류다. 우리나라 음악 영재들이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석권한 소식을 통해 다시 한 번 코리아 파워를 확인한다. 남자 성악의 박종민(24), 여자 성악 서선영(27), 바이올린 3위 이지혜(25), 피아노 2위 손열음(25), 3위 조성진(17)이 그 주인공들이다.

우리 스스로도 대견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서양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걸 신기해한다. 이들이 해외에서 많이 받는 질문도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서 한국인들은 서양 클래식을 그렇게 잘하는가? 그 비결은 무엇인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는 수상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의 탁월한 열정과 끈기”를 꼽았다. “한국인들은 좋아하는 걸 만나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끈질기게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피아니스트 엄마가 주신 바이올린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성실하게 음악도로 성장해왔다는 이지혜의 자기 이야기 속에서도 키워드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한 사람의 세계적인 예술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성장 과정을 통한 관심과 훈련이 필요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지난 6월 호암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 역할을 어머니가 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적인 음악가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어려서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집중적인 교육을 시켜야 하며, 좋은 음악 스승을 만나야 한다”면서 자신에게는 “어머니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매니저이고 멘토였다”고 말했다. 인생의 원숙기에 들어선 정명화는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그 도움을 이제는 자신이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재단을 만들어 인재 양성에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예술가의 인생길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자살을 하기도 하는 비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후원자를 만나기도 힘들고, 정책적 뒷받침도 없는 상황에서 예술가를 육성해낸 유일한 사람은 어머니들이었다. 정트리오, 안트리오 같은 세계적 명성의 음악가들의 헌신적인 어머니의 교육열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들을 만날 수 있는 인재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차이콥스키 수상 소식이 더 반가웠던 이유는 이제 예술가를 키워내는 지원의 손길이 어머니들의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상자 중 4명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영재 지원 프로그램의 수혜자였다. 기업과 정부의 교육이 예술 영재와 잘 만나니 클래식에서도 유학파가 아닌 ‘토종의 승리’가 가능했다. 가장 주목받은 수상자 손열음은 부모가 교사로, 호사스러운 부모 뒷바라지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기업의 지원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예술가를 키워가는 일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소수 생각이 깨인 열성적 어머니들의 뒷바라지에 의존하기에 우리나라 예술 영재들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자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가를 지원하는 업무팀을 보강해야 한다. 우선 예술인들이 생활고에 지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술가를 위한 복지를 살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가능성이 보이는 영재들은 지속적으로 집중적인 훈련이 가능하도록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수상자들처럼 세계적인 무대에 등장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극장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적 명성이 높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진짜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이번 수상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소망은 단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예술가들을 생활고에서 보호하고, 예술가 뒷바라지를 어머니의 손에서 이어받아 정책적 지원을 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않을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