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재계의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갈등의 발단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제공했다. 허 회장은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법인세 감면 철회’와 ‘반값 등록금’ 대책에 대해 “정책 신뢰성을 깨는 포퓰리즘”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여야가 한목소리로 재계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치권은 재계가 정부로부터 관세수입조치, 고환율저금리정책 등 시장원리에 반하는 각종 특혜를 받았지만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인색하고,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하려는 의지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재계는 정치권의 이런 비판에 대해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전형적인 재벌 때리기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이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의도적인 비판을 통해 서민들의 표를 얻으려는 발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의회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권과 재계 어느 쪽 주장이 맞느냐를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런 소모적인 갈등을 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재계의 잘못된 관행과 행태는 정부와 사법적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지 입법의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다. 만약 입법부가 사법부의 영역에 해당되는 법적 판결 기능까지 수행한다면 정치 과잉, 입법권 남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를 했으면 이것은 일차적으로 공정거래위의 영역이고, 더 나아가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면 사법부의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업이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로 조업을 중단하는 것은 법으로 보장받고 있는 경영자의 고유 권한인데 이를 국회가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주장들은 일견 맞는 것 같지만 의회민주주의라는 큰 틀 속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회는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반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중요한 쟁점 사안에 대해 국회가 침묵한다면 그것은 죽은 국회다. 다만, 국회가 사회의 핵심 쟁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반응할 때 여론에 영합해서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면 의회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발언과 재계의 불공정 행위는 별개의 사항이다. 국회 공청회 참석 여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뜻에 달려 있다. 국회가 고견을 듣기 위해 예의를 갖춰 대표적인 경제단체 수장의 참석을 요청하는 것과, 공청회에 꼭 나와야 하고 안 나오면 고발 조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국회 지식경제위의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 공청회에서 재계 수장이 반값 등록금, 법인세 감세 철회 반대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만큼 당당하게 국회에 참석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바림직한 것이었다. 그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국회도 대기업의 횡포 문제와 허 회장의 발언 문제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대처했어야 했다. 전자의 경우, 필요하면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열어 건설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성숙한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나라에서 의회는 감성적이고 포퓰리즘적인 행태를 지양하고 철저하게 이성과 원칙에 입각해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 재계도 정치권과 한번 붙어보자는 고답적인 자세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은 대기업들이 자신의 친·인척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 형태로 편법적인 부(富)의 대물림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들은 이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숙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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