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예술 즐기는 세상 염원…“보통 사람들로 ‘찌질이 엑스포’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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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 사진=장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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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위원장, 이주 여성 지원을 위한 전국 순회 전시회(‘아시아의 행복한 동행’전),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을 위한 그림 기부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박재동(58·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사진) 화백. 그의 틈새 시간을 비집고 가진 인터뷰 내내 광화문에서 마주친 글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토록 자주, 그토록 넓게 이런저런 사람과 세상살이에 “꽂히고” 이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려낼 수 있는 자유로움이 부럽기 그지없다. 이주 여성들을 위해 5년여간 작업해온 작품 1000여 점을 선뜻 내놓고 전국 곳곳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순회 전시회에 끙끙 앓아가면서도 찾아가는 발걸음은 그들의 ‘어마어마함’을 감지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주 여성 돕기 순회 전시 “그들도 우릴 돕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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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주 여성들에 대해 아는 것은 단지 현재 그들이 ‘가난하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뿐이다. 고향·친척·동생의 아내가 베트남 여성인데 이주 여성을 하대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많이 걱정된다. 예전부터 주장해온 것이 힘의 논리를 벗어나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똑같이 배워야 한다. 그들도 우리의 아내이자 며느리인 우리 식구인데 우리 식구의 문화를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래서 늘 말하는 것이 우리도 베트남 쌀국수 기술을 배우고, 몽골 노래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우리 문화가 풍부해진다.”

그는 말끝에 어느 몽골 여학생이 “난 한국말은 서툴러요, 그런데 몽골말은 잘 해요”라고 말했을 때 느낀 대단한 충격을 얘기했다.

“다문화 사회를 위해 새로운 차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즉, 그들도 우리를 돕게 하자는 것이다. 베트남 출신 엄마를 가진 아이가 항상 주눅 들어 다니다가 엄마가 어느 날 학교에서 베트남 음식 강연을 한 후 기가 살아 즐겁게 학교를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엄마의 나라가 있는 외갓집 가는 것도 어렵고 외갓집의 문화를 당당히 말하기도 힘들다면 그 아이의 반쪽 삶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래서 ‘외갓집 찾아주기’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그래야 그 아이가 두 개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가진 아이로 자라나고, 그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그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붙인 ‘인생만화’ 한 장을 펴 보았다. 길에서 어묵을 파는 “남 도와주기 좋아하는” 오신남 아주머니의 말을 빌려 말한다. “난 가슴에 하얀 박꽃을 안고 사는 사람이야. 가슴을 딸 수 있다면 따서 보여주고 싶다니까”라고. 그가 보여주고 싶은 ‘박꽃’은 무엇일까. 평범한 사람이라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그때 느끼는 순간의 희열은 오롯이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닐까. 그가 2000년대 초부터 줄곧 강조해온 ‘손바닥 아트’론을 들어보면서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처음엔 좀 짜증이 나다가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가 좀 나중에 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렇게 그려 차곡차곡 쌓인 그림을 보노라면 내 삶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다. 그림으로 삶을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소중해지고, 또 나를 굉장히 사랑하게 된다. 나처럼 사람들이 미술을 쉽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꿈이다. 예술의 민주화라고나 할까. 그래서 줄곧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손바닥 아트’다.

시간이 없다보니 큰 그림 그리기가 참 힘들어 짧은 시간에 금방 그릴 수 있는 작은 그림을 택하게 됐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다. 작은 그림으로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젊었을 때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같은 대작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건 좀 더 나이 들어 한가해지면 해야 할 것 같다(웃음).”

그는 그림이란 모름지기 스케치북에 그려야 한다는 생각, 그림 채색을 위한 컬러링 도구를 갖춰야 한다는 강박감, 뭔가 표현하는 즐거움을 가로막는 못 그렸다란 콤플렉스 등 기존 미술 교육에 의한 선입견이 손바닥 아트를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휘문고에서 미술교사를 하던 시절 도화지 한 장에 몽당연필 한 자루만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맞은편 정신여고를 향해 종이비행기와 병뚜껑을 날리게 하는 등 ‘기행’에 가까운 수업을 진행했던 것도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예술혼을 몸으로 느끼고 즐기게 해주고 싶은 작은 배려 아니었을까.

“교사는 수업 시간만 생각하지 아이들이 졸업 후에도 미술을 즐길 수 있는지는 별로 생각 안 한다. 그림 한편에 그려넣는 낙서도 작품이고, 하나의 선 역시 작품이다. 1㎝가 내 삶의 흔적일 수도 있다. 이걸 알고 즐긴다면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풍요로워질까.”

“‘이발소 그림’은 현대사회의 민화”…열심히 수집 중

 

여성주간을 맞아 박재동 화백이 여성신문 독자들을 위해 축화를 그렸다. 고심 끝에 그는 “꽃보다 달보다 별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여성이어라. 그대는 세상의 반이 아니고 전부라네”란 자기 고백을 했다.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여성주간을 맞아 박재동 화백이 여성신문 독자들을 위해 축화를 그렸다. 고심 끝에 그는 “꽃보다 달보다 별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여성이어라. 그대는 세상의 반이 아니고 전부라네”란 자기 고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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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하면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어야 하고, 음악을 하면 오케스트라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의 예술에 대한 표피적 생각은 끝없는 좌절감을 키우며 예술과 멀어지게 한다. 프랑스처럼 평소 그린 그림을 모아 집에서 전시회를 하고 동네 지인들 모아 자그마한 파티라도 열 수 있는 게 바로 재미 아니냐고 반문한다.

“일전 상하이 엑스포를 보며 생각했다. 최고의 기술과 예술성을 겨루는 무대 한마당인데, 우린 차라리 ‘찌질이 엑스포’를 해보자고. 초딩이든 아줌마든 동네 예술가들이 나와 그림 그리고 노래하는 그런 엑스포는 어떨까. 500원, 1000원을 주고 예쁜 강아지 그림을 살 수도 있고, 서로 맞교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자 가치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내 마음에 그것이 꽂히느냐, 안 꽂히느냐’ ‘나를 위로해 줄 것이냐, 아니냐’는 그런 확신이다. 대단한 전시회라도 내겐 아무 감흥도 안 줄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천대시하는 ‘이발소 그림’을 좋아하고, 심지어 국내는 물론 외국에 나가서까지 수집을 해온다.

“어릴 때 이발소에 가면 푸른 연못에 오리도 둥둥 떠가고 물레방아도 콸콸 돌고, 폭포도 흐르고 이런 그림들을 흔히 봤다. 리얼리티는 없지만, 그게 유치하든 말든 바라보는 그 순간 내 정신이 쉼을 갖게 된다. 얼마나 환상적인 세계인가. 미술을 공부하다보니 이 ‘이발소 그림’은 이 시대의 민화란 확신이 든다. 민화는 쉽게 말하면 김홍도 등 일류 화가의 그림은 일반인들이 즐길 수 없기에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짝퉁’을 그린 것이다. 어떤 면에선 민중이 생각하는 파라다이스, 민중의 희망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옛날 민화엔 감탄하면서도 이 시대의 살아있는 민화는 모른다.”

그의 말을 들으며 “시사만화의 대부”인 그도 여성신문 초기인 1980년대 말 지면에 별로 명예스럽지 못하게 등장한 일이 기억났다. 시사만평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을 여성으로 형상화해 비하한 데 대해 여성신문이 일침을 가한 것.

“그 일 이후부터 상당히 조심을 했다(웃음). 기존 여성 통념을 만평에 활용한 꼴인데, 여성운동은 이 통념을 깨자고 치열하게 싸우는 동네 아닌가. 그러면서 그 지적의 의미를 차츰 이해하게 됐다.”

여성신문의 만평 여성 비하 지적 후 “상당히 조심”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 참에 그는 잠깐 자신을 쳐다보라고 말하며 펜을 꺼내들었다. 기자의 얼굴을 스케치하면서 묻는다. “아이를 키우는 게 더 힘드냐, 자신을 키우는 게 더 힘드냐” “아이를 키우는 게 더 재미있느냐, 자신을 키우는 게 더 재미있느냐”고. 그러면서 “살다보면 다 나를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실은 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남자는 가정생활이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위풍당당하고 개성 강한 아내(배우 김선화) 덕이 아닐까. 그 자신도 이를 아는 듯했다.

“우리 이모가 중매했는데 집사람은 연애 한 번 안 해본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 너무 재미있어. 대강 결혼을 하기로 분위기가 돼가자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엄마가 불교고 자신은 가톨릭이라 고생을 많이 해 그런지 첫째 조건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남편 때문에 연극활동을 계속 못 하는 친구의 예를 들어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론 ‘예술 한다고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은 인정 못 한다’고 하더라. 이 조건에 모두 ‘당연하지’ 답했더니 결혼 오케이를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집사람이 참 보통여자가 아니다.“

왠지 종교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보자 그의 대답은 “모든 종교를 다 믿는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가면 교회대로, 성당을 가면 성당대로, 그리고 불당에 가면 불교대로 다 일리 있는 말을 해 “그 말도 맞네”라며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손바닥만 한 백지에 드넓은 세상이 정겹게 내려앉는 이유를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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